남서아인(도슨트/미술 전시 해설사) 파리 어학연수, 순천 소녀시대 파리 전 시 기획 (큐레이터) 루브르 박물관전/오르세미술관전/마 크 로스코전/파리 장식 예술 박물관전 전시 해설사
남서아인(도슨트/미술 전시 해설사) 파리 어학연수, 순천 소녀시대 파리 전 시 기획 (큐레이터) 루브르 박물관전/오르세미술관전/마 크 로스코전/파리 장식 예술 박물관전 전시 해설사

이 여름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연구원들의 구례 여순사건 구술 채록이 한창이다. 구술을 듣기로 하여 구례읍에 있는 한 카페에 도착했을 때 구술자와 그의 딸이 동석해 있었다. 삼십 대 초반의 이국적 외모를 가진 그녀는 남서아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어떻게 아버님과 이런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느냐는 물음에 그녀가 답했다.

“희생된 그분은 법적으로는 제 할아버지로 돼 있어요. 열아홉의 나이로 자손 없이 희생된 탓에 아버지가 그분의 양자가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 집에서 제사를 모시는 거죠.”

또박또박 여순사건 때 희생된 할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그녀는 여순 유족 3세대가 되는 셈이다. 남서아인 씨는 미대에서 도예를 전공했다. 미술관의 도슨트라고 일종의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에서 루브르 박물관전, 피카소 전, 모네 전과 같은 전시회에서 작품 설명을 했다. 지금은 파리에 있다가 코로나로 인해 구례 집에 와서 머물고 있으면서 여순사건을 연대해서 알릴 방법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여순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순천의 소녀시대 할머니들을 아세요? 문맹인이었던 그분들에게 순천 시립 그림책 도서관에서 글이랑 그림을 가르친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들이 처음으로 글을 썼는데, 그 글에 6‧25와 여순사건과 같은 이야기들이 나와요. 역사의 산증인이죠. 그것을 가지고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전시하고 그랬어요.”

남서아인 씨는 파리에서 그 책자를 접했다고 했다. 할머니들 이야기를 전시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역사적 사건을 접하며 숨겨진 역사가 많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의아했다.

“파리에 있다 보면 그들은 비티에스에 열광하고, 한국에 열광해요. 그런 거 보면서 그게 다 할머니 세대들이 고생한 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것을 좀 조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 밑바닥을 깔아주었으니 다른 누군가가 빛나잖아요. 저는 그런 것이 비춰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할머니들 이야기 속에서 여순사건 등 저희 세대들이 잘 모르는 내용이 담겨 있어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 싶었어요. 파리에서도 5월에 국제 전시를 기획해 놨었어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9월 이후에나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원래는 ‘유네스코랑 얘기해서, 크게 알려야겠다’ 했는데….”

“지금은 온라인 전시로 할머니들 이야기를 소개해 놨어요. 앱을 깔면 보실 수 있어요. 사실 저는 여순사건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아빠한테 얘길 듣곤했는데 잘 몰랐어요. 이번에 코로나 영향도 있고 해서 온라인 전시를 해보자 했죠. 준비하다가 반란군이라는 단어를 접했어요. 그동안 관심 밖이었는데 이게 여순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죠. 제 주변의 일부 젊은이들은 제주 4‧3 사건은 알아도 여순사건은 몰라요, 아무도. 그래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사람들은 관심도 없는 거 같아요.”

여순사건과 관련하여 구술채록하러 다니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게 제주 4‧3 사건은 2세대, 그 밑에 3세대들이 활동하는 반면에 여순사건은 3세대들이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세대들이 그걸 감춘다. 그게 안타깝다.유족회 나오시는 분들이 칠팔십 대인데, 그럼 대가 끊겨버리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네, 젊은이들이 아무도 활동하지 않아요. 다들 쉬쉬하시는 거 같아요. 알려야 되는 이야긴데…. 당시는 약한 사람들이니까 살기 위해서 쉬쉬했던 거 같아요. 당한 것도 억울한데. 이게 안 알려진 게 충격이었어요. 이 사건을 덮는다는 게 무서운 거 같아요. 국가가 은폐시키는 거잖아요.

여순사건 피해자 자손인 친구가 있어서 같이 알려보자고 제안했어요. 제주 4‧3 사건은 젊은이들이 가담하여 많은 도움을 줘요. 제 서울 친구들도 제주 4‧3 사건과 관련이 없는데도 시민의식이 고취되면서 도우려고 노력해요. 미투사건 같은 것도 SNS를 통해 서로 도와 알리잖아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파되는 거죠. 여순사건은 7, 80대 어른들이 조용히 국회에 가고 그렇게만 하는데 이게 대중에게 확 퍼지지 않는 이상,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호응을 받지 않는 한, 아무리 국회로 간다고 해도 안 되는 거죠.”

여순사건은 자신들이 험한 꼴을 당해서, 자식들에게는 그것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자신들 대에서 멈추자, 이런 의식이 강하다.

“이런 것은 이삼십 대에 전파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파리에서 공부하다 왔는데 한국이 문제가 뭐냐면 역사교육에 관한 거예요. 그네들은 시민운동을 해서 왕을 처단했고,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의식이 잡혀 있어요. 근데 우리는 근현대사를 숨기잖아요. 왜냐면 정권이 자기들 마음대로 은폐를 했으니까. 우리 역사의식이 뿌리 뽑힌 거 같아 안타까워요. 우리나라가 민주사회라고 하는데 여전히 권력층에서 역사의 어떤 정보를 은폐하고 있다는 것은 그게 아닌 거잖아요.”

앱을 통해 역사를 알린다고 하셨는데 어떤 식으로 알리고 계시는지.

“지금 만든 앱에서 국내에 있는 미술관 도슨트들이, 거기서 일하는 큐레이터들이 작품 이야기를 해요. 저의 경우 작품을 가지고 역사 이야기를 조금씩 넣어요. 제가 한 개인으로서 역사가 정확히 정리가 안 된 상황이라 할머니의 한이 맺혀 있으니 많이 기억해 주세요. 그 정도까지만 이야기해요.”

여순사건과 관련하여 그 앱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저처럼 유가족의 젊은 자녀들이 있을 건데 대다수 관심이 없을 거예요. 그러나 네트워크가 연계되고, 그런 커뮤니티가 많아져서 젊은이들이 SNS로 많이 알렸으면 좋겠어요. 시민의식이 깰 수 있게. 제 주변에는 진보층 친구들이 많아요. 근데 그 친구들마저도 여순사건에 대해서 모르는 거예요. 한국의 젊은 친구 중에서 아직도 제주 4‧3을 모르는 친구가 있는데 여순사건은 아예, 다 모르더라고요. 여순사건을 검색해 보니까 안 나오더라고요. 게시글이 없어요. 그것도 필요하고요.

제가 이 전시회를 크게 하고 싶은 이유가 있어요. 역사를 권력자가 기술하면 자칫 각본이 될 수도 있는데 할머니들의 증언은 살아있는 역사를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저는 순천시 교육청이나 전라남도 교육청에 알려서, 이 앱을 학생들에게 한 번씩이라도 보게 하면 좋겠어요. 이 할머니 전이 국내 도서관에서 ‘열정과 꿈’에 포커스를 맞춰 전시가 많이 됐었어요. 저는 그것을 역사적 사료로 본 거예요. 서울의 역사박물관이나 국립박물관과도 연계해서 알렸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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