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방」 정지아

『검은 방』 정지아
『검은 방』 정지아

정지아는 전라남도 구례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를 졸업했다. 1990년 장편 『빨치산의 딸』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었다. 소설집으로 『행복』, 『봄빛』, 『숲의 대화』 등이 있으며 이효석 문학상, 한무숙 문학상, 올해의 소설상, 노근리 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구례에서 노모를 모시고 대학에 출강하며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소설가 정지아
소설가 정지아

「검은 방」의 주인공은 아흔아홉 살의 노파다. 남편과 지리산에 입산하여 남부군으로 싸우다 산에서 붙잡힌 그녀는 오 년간 감옥살이한다. 그녀는 산에서 ‘퍼렇게 날 선 한 자루 검’으로 활동했던 그때, 모든 감각이 ‘살아있는 것’이라고 믿었으나 감옥에서 나온 이후 침묵의 세월을 견딘다. 세파 속에서 마흔둘에 낳은 딸을 ‘등대’ 삼아 아흔아홉 해를 살아온 노파는 자신의 삶을 술회한다.

정지아는 『빨치산의 딸』을 쓴 작가이다. 그리고 ‘빨치산의 딸’이다. ‘빨치산의 딸’은 정지아의 작품을 언급할 때 그리고 정지아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따라붙는, 트레이드마크다. 그러나 나는 정지아의 작품을 읽을 때 그것을 내려놓는다. 때로 그것은 그녀의 작품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녀의 다수의 작품은 ‘빨치산’을 소재로 삼는 탓에 이데올로기가 부각되는 듯이 보인다. 그렇게 읽을 때 독자는 그녀가 가리키는 손가락 너머의 달을 놓치는 우를 범하기 쉽다. 그것은 우리 문단에서 여타의 작가와 구별시키는 선 굵은 정지아의 자리를 담보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정지아의 작품은 이데올로기 너머에서 우주적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통찰, 생명 예찬이 진한 향을 발한다. 『빨치산의 딸』을 발표하고 6년 뒤쯤 이 작품이 세상 풍랑에 휘둘리고 있을 때 정지아는 신춘문예를 통해 「고욤나무」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신문지상에서 「고욤나무」를 발견했을 때 나는 정지아의 독자가 되었다. 이념을 넘어선, 작가의 생명을 대하는 시선은 늘 따사롭다.

“창문을 블라인드로 가려도 햇빛은 어디론가 새어든다.”

소설은 이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문단의 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빛과 어둠의 순환 속에서 그녀는 아흔아홉 해를 살았다.”

아흔아홉 그녀의 삶은 빛과 어둠의 소용돌이였다. 그러나 그녀의 술회 속에서 빛과 어둠은 어느 한쪽에 비중을 둔다거나 치우치지 않는다. 빛과 어둠의 경계 그리고 무화, 그녀 술회의 마지막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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