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상상력에 대하여

윤철호 변호사
윤철호 변호사

“아레 대담에서 ‘지리산은 장중하고, 금강산은 수려하다는데, 선생님은 어느 쪽을 더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았어. 나는 동네 뒷산이라고 했지. 할머니들이 고무신 신고 올라가서 그늘 밑에서 잡담하는 그런 낮고 편안한 산이면 되지, 장중할 필요가 있어? 뒷산은 천상병 시인의 ‘주막에서’라는 시에도 나오잖아? 골목 어귀에서 서툰 걸음인 양 밤은 깊어가는데, 할머니 등 뒤에 고향의 뒷산이 솟고. 얼마나 좋아?”

이반 일리치 읽기 모임에서 김종철 선생님이 한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제가 선생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2년 무렵입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새소리, 솔바람 소리를 벗 삼아 지낸 지 약 10년이 된 때였습니다. 그 무렵, 조카가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 몇 권을 선물로 주고 갔습니다. ‘간디의 물레’의 첫 서너 문장을 읽으면서 완전히 몰입 상태로 빠졌습니다. 그 후 일리치 모임에 합류하여 매주 토요일 하루를 선생님하고 친구들하고 떠들며 놀았습니다.

선생님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말은 ‘상상력’입니다. 이 말은 ‘시와 역사적 상상력(1978년)’,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2008년)’,‘大地의 상상력(2019년)’의 책 제목으로 쓰였습니다. ‘상상력’의 대척점에 있던 말은 ‘기제’, ‘시스템’, ‘메커니즘’, ‘입·출력’, ‘관리’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기억이라는 뜻으로, ‘입력’이 어쩌고 했는데, 선생님은 불같이 화를 내시며 “입력이 뭐꼬, 입력이. 니가 기계가?”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야단을 맞고야 이런 말들을 떼어내 버릴 수 있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겨우 낱말 하나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마지막에 쓰신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에서 ‘근대적 언어밖에 모르는 빈곤한 정신력으로 인간사의 내적 진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근대적 인식체계의 틀에 의거해서 만들어진 객관적인 용어’가 상상력을 질식시키는 현상은 근대적 언어로는 설명될 수 없고, 오직 소박한 성찰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상상력은 ‘유머’에서도 번뜩였습니다. 의심의 여지 없는 관념체계를 한마디로 허깨비로 만들어버렸으니, 이것은 가히 거대한 사상이었습니다. 또한 그 유머는 자신을 성찰하는 풍자였고, 친구들에게 베풀어준 우정과 환대를 위한 틈새였습니다.
선생님은 지난 3월에 쓰신 짤막한 글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 ‘고립’의 시간을 ‘고독’의 시간으로 변환시키는 일일 것이다. 독서가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고독 속의 ‘깊고 느린’ 독서를 통해서만 우리 자신과 인생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좋은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니까 말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기신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이라는 글은 평소에 일리치 모임에서 조곤조곤 들려주셨던 말투 그대로입니다. 이번 여름휴가에는 이 글을 천천히 베껴 써 볼 생각입니다. 선생님의 사상은 대지에 땀을 떨어뜨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이지, 사회의 모범적인 부품으로 살아가는 저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더 오래 머무는 독서가 필요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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