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을 떠나 유족의 아픔을 위로해야

진행 : 최성문 편집위원

- 여순사건 영화는 왜, 없을까? 라는 문제의식에서 제작

- 역사적 실체보다는 유족들의 아픔을 중심으로 전개

- 올해 여수, 국회 시사회를 거치고 내년에 개봉 예정

동백꽃 붉은 여수/ 망망한 바다/ 그대는 가슴에 피묻은 붕대를 감고// 파도소리에 뒤척이네/ 잠 못 이루네/ 푸른 하늘 서러워 동백꽃 지는 날/ 아직도 흐르지 못한 그 세월이/ 내 가슴에 흐르네/ 흐르고 있네

72년 전, 죽어야 할 이유도 모르고 죽어야 했던 아픔을 핏빛 동백으로 형상화한 박두규 시인의 시 <여순동백>이다. 여순10·19문학의 대표적 상징인 ‘동백’이 시가 아닌 영화로 제작되고 있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배고픈 사람에게 국밥 한 그릇 주었다고 손가락총에 의해 죽어야 했던 여순10·19의 역사적 비극을 다룬 영화 ≪동백≫의 신준영 감독을 지난 7월 21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지난 6월 23일 여수문화홀에서 열린 영화《동백》제작 발표회 (제공: 해오름ENT)
지난 6월 23일 여수문화홀에서 열린 영화《동백》제작 발표회 (제공: 해오름ENT)

Q. 반갑습니다. 영화 ≪동백≫은 여순10·19를 다루는 최초의 영화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연유로 금기의 역사를 영화로 제작하게 되셨는지?

제 고향이 충북 청주이어서 여순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회사에서 웹드라마 영화제를 매년 8월에 하는데, 여수시에서 여순사건 관련 웹드라마를 제작하여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여순사건 관련 웹드라마를 보면서 아쉬운 게 많았습니다.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잠깐 들은 적은 있지만, 여순사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가 자료를 찾아보니 제주4·3사건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주4·3사건은 대중적으로 익숙하고 영화도 있는데 왜, 여순사건과 관련된 영화는 없을까? 라는 문제의식에서 기획,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Q. 박근형 등 쟁쟁한 배우들이 캐스팅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처음 캐스팅되었을 때 배우들의 반응이 다양했을 것 같은데 궁금합니다.

박근형 선생님은 정읍 출신이고, 여수 출신 백일섭 선생님과 굉장히 친하셔서 여순사건에 관해 내용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두 분 중 영화의 중심 배경인 국밥집 ‘동백식당’의 주인 황순철 역으로 박근형 선생님이 더 어울리셨고, 시나리오가 구성될 때 박근형 선생님이 ≪장수상회≫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 캐릭터가 그대로 왔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박근형 선생님께서 여순사건을 영화를 제작한다고 하니 적극적으로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조금 더 예산이 있었더라면 사건 당시 1948년 상황을 많이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민간인의 학살을 더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도 말씀하셨습니다.

 

(제공: 해오름ENT)
(제공: 해오름ENT)

Q. 여순10·19는 아직도 논란이 많은 역사인데 스토리는 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요?

여순사건에 대해 누가 나쁘고 누가 좋고 이런 내용을 다룰 순 없습니다. 그 사건을 배경으로 희생당한 민간인 가족들의 아픔을 그려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 배경으로 국밥집 ‘동백식당’이 설정되었습니다. 배고픈 14연대 군인에게 국밥 한 그릇을 준 것이 부역죄가 되어 총살당한 아버지, 그로 인해 연좌제 등 집안이 풍비박산되었고, 70여 년이 지난 현재의 시간에서 아버지를 손가락총으로 지목한 가해자의 집안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야 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두 집안의 갈등과 화해, 용서의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동백》촬영 현장 (제공: 해오름ENT)
《동백》촬영 현장 (제공: 해오름ENT)

Q. 역사를 다룬 영화이다 보니 역사 속의 실제 인물 중 어떤 인물들이 등장하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원래는 지창수 등 14연대 군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는데 예산 부족으로 생략하고 주로 민간인들의 아픔을 중심으로 다루었기에 역사 속 특정 인물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역민들에게는 잔인한 민간인 학살로 널리 알려진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백승익 역)이 잠깐 등장합니다. 전체적으로는 황순철(박근형 역)의 시점으로 국밥집을 운영하면서 인물 중심으로 시나리오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Q. 코로나 사태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요?

역사를 다루는 영화다 보니 제작비를 많이 예상했습니다. 원래 예산 30~50억 예상으로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들과 함께 하려고 했으나 코로나로 투자를 받지 못했습니다. 기업도 그렇지만 제작사에서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촬영도 코로나 때문에 서울 촬영 분량을 최대한 줄이고 여수에서 많이 찍었습니다. 실제 제작비는 15억 정도 들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기업들의 투자 유치도, 촬영 일정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Q. 영화 ≪동백≫은 원래 올해 하반기 개봉 예정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영화 진행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현재 촬영은 마친 상태입니다. 9월 말, 10월 초에 여수 시사회는 예정대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때 당시 OST 등 음악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영상은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보완해서 국회 시사회는 10월 말, 11월 초에 진행될 것이고, 이즈음 ‘베를린영화제’ 작품 심사를 받는데, 결과가 좋으면 내년 2월 ‘베를린영화제’에 출품을 할 계획입니다. 개봉은 2021년 10월 19일 전후로 개봉을 할 예정입니다.

Q. 주요 촬영지 소개와 영화에서 가장 부각하고 싶은 장소는 어느 곳인지?

영화의 주 무대는 국밥집입니다. 여수에서 돌산 향일암 가는 곳에 ‘갈치조림 기똥차게 맛있는집’이 있는데 그 집을 가보니, 바다와 인접해 있고 분위기도 작품하고 잘 맞는 장소여서 세트장처럼 썼습니다. 거기에서 대부분 촬영도 진행했고, 부역혐의자로 몰려 많은 민간들을 학살했던 운동장 장면은 지금은 폐교가 된 돌산 중앙초등학교에서 촬영했습니다. 운동장에 풀이 많았는데, 트랙터로 밀고 촬영을 했습니다. 그밖에 순천 드라마세트장에서도 촬영했고, 아버지가 총살당하고 만성리에 묻혔기에 형제묘에서도 직접 촬영했습니다.

 

《동백》촬영 현장 (제공: 해오름ENT)
《동백》촬영 현장 (제공: 해오름ENT)

Q. 영화 제목을 ≪동백≫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는 있으신지요?

저는 동백이 봉우리째 떨어지는 꽃이라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겨울에 팸 투어로 오동도를 갔더니 하얀 눈밭에 봉우리째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니 하얀 눈에 빨간 동백꽃이 얼핏 보면 피 같기도 하고, 눈 속에 더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여순사건 민간인들의 희생을 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붉은 동백의 꽃말도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인데 역사적 아픔을 승화시킨 의미로도 다가오기도 합니다.

Q. 끝으로 영화를 제작하면서 느낀 소회와 여순10·19와 관련하여 영화로 만날 관객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요?

영화를 제작하면서 유족들을 만났을 때 유족들의 아픔, 억울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때 내가 유족이었다면 어땠을까? 유족들의 아픔을 찍다 보니 예산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 특별법이 꼭 제정되어서 유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영화 ≪동백≫이 여순사건에 대해서, 유족들의 아픔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국민들이, 관객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화 ≪동백≫을 많이 응원해주시고,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나는 빨갱이의 자식이 아니다.

살았다.

그 잔혹했던 날들로부터 살아남았다.

배고픈 사람에게 국밥 한 그릇 주었다고 빨갱이 낙인이 찍혔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불구가 되었다.

왜 하필 그때 국밥을 주었는지···.

어린 내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아버지는 죽었다.

이웃이라 믿었던 사람들의 손가락질 한 번에 그렇게.

여순 사건이 일어난 지 72여 년이 흐른 지금.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많은 문제들.

무엇이 잘못됐고, 누가 나빴던 걸까.

옳고 그름이란 결국 힘 있는 선택자들의 몫.

그들의 선택이 무엇이든, 우린 잊힌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너무 아까웠던, 살았다면 아름다웠을 넋을 위로하고 싶다.

≪동백≫ 기획 의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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