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춘희 (어린이책시민연대 활동가이자 교육희망네트워크 상임대표. 걷는 걸 좋아하고 이야기 나누는 걸 즐기며, 순천의 매력에 한껏  빠져있는 아줌마)
변춘희 (어린이책시민연대 활동가이자 교육희망네트워크 상임대표. 걷는 걸 좋아하고 이야기 나누는 걸 즐기며, 순천의 매력에 한껏 빠져있는 아줌마)

10년 전쯤 제주도를 갔을 때 화가 이중섭이 살던 집을 들렀다. 그가 살던 곳은 바닷가 어떤 집의 작은 방 한 칸이었다. 가난한 화가가 불 떼는 아궁이도 없는, 겨울이면 추위와 찬바람을 홀로 견디며 이 작은 방에서 외롭게 살았겠다고 생각하며 돌아서는 순간, 눈앞에 바다가 보였다. 제주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황홀한 바다 풍경이 집안에서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가족을 일본에 두고 홀로 왔으니 제주 어느 곳에서든 머물 수 있었을 텐데, 여기 이집을 선택한 이유가 이 멋진 풍경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사는 집을 고를 때 사람들마다의 기준이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변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도시에 살았던 나는 도시를 좋아했다. 마당이 있는 주택보다 아파트가 좋았다. 집을 가꾸는데 품이 덜 들고 공간이 독립적이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 아파트가 좋았다. 나무가 많은 오래된 아파트를 찾아 다녔지만 대도시의 삶이 좋았다. 일요일 아침이면 일부러 서울 삼성동 코엑스같은 텅 빈 빌딩숲을 거니는 재미를 즐기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2007년 서울을 떠나 타쉬켄트에서 일 년을 살게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쉬켄트에서 ‘1년 살이’는 생활의 필요한 대부분을 장보기로 해결하고 어디든 차를 타고 이동하던 서울의 삶과 다르게 살아본 첫 경험이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던 날, 처음으로 서울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도 10년을 훌쩍 넘겨 나에게 ‘순천 한달 살기’를 하는 행운이 찾아왔다. 일단 한달 살기를 위한 숙소를 구했다. 오랜 친구 둘이 순천대 근처에서 살고 있는데 집 근처에 지인이 일본어모임을 하는 모임방 일본인 선생님이 코로나 대란으로 인해 일본을 가서 발이 묶이면서 비어 있는 방을 구해 주었다. 문화의 거리와 옥천 사이에 있는 이 곳은 꽃과 나무로 가득한 예쁜 마당이 있는 한옥집 문간방이었다. 아흔이 훌쩍 넘은 주인 할머니께서 지금은 살고 있지 않아서 아침에 마당으로 날아든 새소리에 잠이 깨면 한옥 마루에서 햇볕 쪼이기가 가능했다. 문간방 옥상에 올라가면 나무와 어우러진 한옥이 내려다보였고 이 또한 이중섭이 살던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견줄만한 풍경이었다. 옥상에서는 옆집 마당에 심어둔 모란이며 상추뿐 아니라 마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 건너 건너 집까지 다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우연히 창고 위로 넘어온 옆집 처마지붕과 살짝 휘어진 담벼락을 발견했다. 그리고서 동네를 돌아보니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네모반듯하게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튀어 나오거나 움푹 들어가 옆집과 서로 간섭하는 모양이 대부분이고 지붕이 겹쳐 있는 것은 예사였다. 드문드문 한옥이 있고, 오래된 집과 새로 지은 집, 고쳐지은 집이 뒤섞여 이런 조화를 만들어 내는 게 신기했다. 서로 넘나드는 지붕은 도시에서는 갈등의 요인이다. 이웃에서 들여다 보일만한 곳은 차단막을 치고, 울퉁불퉁한 벽은 측량하여 반듯이 나누고, 서로 간섭하고 불편을 주는 요인들을 애초에 없앤다. 심지어 꽃나무조차 경계를 넘지 않는데, 이렇게 서로 어우러진 집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함이 일었다.

처음 만난 동네 사람은 뒷산 참샘 약수터 가는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였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걸어가는데 앞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주오던 아주머니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도 답례로 인사를 하고는 ‘노래 소리가 참 좋아요.’라고 덧붙였더니 지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약수터 자주 다니는가?’로 시작해서 자네, 어디 사는가? 낯선 곳에 와서 산을 오르다니 참 좋아 보인다며 난봉산 오르는 새로운 길들을 알려주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후에도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친절하게 대숲길이며 진달래길, 평평한 길, 가파른 길 등을 알려주었다. 처음 만나 텃밭 농사이야기, 아이이야기 등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산에 가지고온 얼마 안 되는 물을 나누어 마시고, 초행길인 나와 동행하느라 빠른 발걸음을 늦추어 속도를 맞춰 걸어 주시는 분들을 보니, 서로 뒤엉킨 지붕과 담벼락을 가지고도 여유롭고 편안하게 사는 순천 분들의 삶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침마다 산책하며 만나는 동네 분들을 보면 이 곳 순천에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다음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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