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호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로시난테를 타고』
진행ㆍ사진 : 최성문 편집위원

자연의 순환, 혹은 생명의 순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어야지속 가능한 미래가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관습, 윤리, 도덕, 종교에 의해서 고착된우리의 생각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순천대학교 오성호 시인
순천대학교 오성호 시인

Q. 먼저 시집 『로시난테를 타고』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세 번째 시집 『빈집의 기억』 이후 무려 15년 만에 나온 시집입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숙성시킨 시들을 세상에 내놓는 소회는 어떠신지요.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그냥 넘겨 버린 걸 포함해서 여러 가지로 아쉽고 부끄러웠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2014년은 등단한 지 꼭 30년 되는 때였습니다. 그 무렵, 아, 그동안 쓴 시를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 할 텐데, 이러면서도 그냥 넘겨버렸습니다. 여전히 작품을 써서 갈무리해 놓긴 했지만, 그걸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용기를 낸 거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써놓았던 작품들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정리했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 단계에서 일단 정리를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미진하다는 생각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정리를 했으니 이제부터 다시 힘을 내서 써 봐야겠지요.

『로시난테를 타고』
『로시난테를 타고』

Q. 개인적으로 최근(코로나 사태 발생 직전)에 스페인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지 시집을 보자마자 제목부터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들끓는 그리움으로 키워낸 나의 애마 나의 애물 로시난테를 타고 갑옷도 칼과 방패도 없이’ 시인이 찾고자 하는 이상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결국은 말과 관련된 고민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은 내 말이면서 내 말이 아니기도 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거지요. 말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인 동시에 우리 세대가 공유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 진정으로 나의 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진정으로 내 마음을 담은 말, 담을 수 있는 말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내게 주어져 있는 말,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해 온 말들을 죽이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떠도는 말을 죽이고 죽이지만, 그래도 끝내 죽일 수 없는 말, 그게 진정으로 나의 진심을 드러내는, 그리고 그것을 내 밖의 너에게 전할 수 있는 진정한 나의 말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렇지만 어렵사리 건져낸 그 말은 여전히 무력합니다. 여전히 여기저기 오염되고 상처받은 흔적을 담고 있는 말인 거지요. 큰 말, 힘센 말들이 휩쓸고 다니는 세상에서 내가 나를 실은 말은 여전히 무기력하다, 그런데도 내가 의지할 것은 이 무력한 말밖에 없다, 이 말에 의지해서만 내 바깥의 세상으로 나갈 수 밖에 있다, 뭐, 그런 생각이었던 거지요. 제가 찾는 대상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알기는 알지만 그게 무엇인지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거지요. 여전히 짙은 안개 속의 길 찾기, 수많은 모습으로 변신하는 세상에서 참되고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는 안간힘. 그런 것들일 것 같습니다. 바람 불어 과녁의 위치를 알리는 깃발은 심하게 펄럭이고 안개까지 끼어 과녁이 보이다 말다 하는 그런 상태에서 활을 쏘기 위해서 화살을 얹은 시위를 당기고 있는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 조각상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 조각상

Q. 등단하신 지 삼십여 년, ‘조장鳥葬’의 시에서 드러난 윤회의 바퀴도 생각해 볼 세월을 살아오시면서 시인으로서 바라보는 생의 본질을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혜안을 듣고 싶습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서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혜안”이란 말은 감히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말이 아니고요. 그리고 이 시에 담긴 제 생각을 산문으로 풀어서 얘기하는 것 대단히 조심스러운 일이라서 답변하기가 어렵네요. 우리의 생활 감각이나 윤리 도덕, 그리고 종교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냥 평소 하는,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누구나 혼자 살 수는 없고 어울려 산다는 아주 상식적인 얘기부터 시작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하자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천지 만물에 빚을 지는 일이라는 거.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살아 있는 다른 것들을 죽여야 한다는 걸 말씀드릴 수 있을 테고요. 애써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지 않지만 실상 우리가 먹는 음식이란 건 무수한 동식물을 사체인 거지요.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고 그걸 불을 이용해서 조리함으로써 음식을 만드는 건데, 그걸 우리는 모든 동식물이 우리에게 내준 그것들의 몸을 음식으로 먹는 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관련해서 이 영화에서 말하는 ‘기생충’이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하는 얘기들이 오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걸 예로 들어서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봉 감독이 어떤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기생충>이란 제목을 붙였는가와 상관없이 저는 먹이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있는 존재는 모두 그 밑에 있는 존재에 기생해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초식동물은 풀과 나무에,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에 기생하는 거지요, 이런 식으로 보면 먹이 피라미드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인간은 만물에 기생해서 살아간다, 혹은 아예 지구에 기생하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산다는 것은 결국 나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생명체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 혹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기생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기생충은 절대로 숙주가 죽을 정도로 숙주의 영양분을 빨아먹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숙주라고 할 수 있는 지구를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가지요. 그래서 비관론자들의 경우에는 조만간 대멸종의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빚진 이 세상(사람이든 자연이든)에 빚을 제대로 갚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반성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 연장 선상에서 <조장>은 그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생각했던 거고요. 자연의 순환, 혹은 생명의 순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지속 가능한 미래가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관습, 윤리, 도덕, 종교에 의해서 고착된 우리의 생각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Q. 마지막으로 시인의 일상은 어떤 풍경인지 궁금합니다. 시는 언제, 어떤 시간에 쓰시는지, 잠 못 이루는 밤에는 무엇을 하시는지, 아침에 눈 뜨면 커피를 마시는지, 산책은 주로 어떤 장소를 이용하시는지 등 시인의 일상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시를 쓰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떤 때는 불면으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불을 켜고 앉아서 끄적거릴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술자리에서 떠오르는 걸 적기 위해서 메모를 하는 경우도 있고···그래서 항상 초고 상태의 글을 여기저기 적어두거나 컴퓨터에 입력해 두었다가 두고두고 천천히 고치는 식입니다. 커피는 거의 온종일 마십니다. 큰 잔에 가득 커피를 내려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한 모금씩 하루 내 마시는 겁니다. 대개는 편하게 잘 자는 날보다 그렇지 못한 날이 더 많습니다.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하면서 잠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그래도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마지막 수단으로 술을 그저 ‘퍼붓고’ 취한 김에 잠이 들기도 합니다.

걷는 걸 좋아해서 틈이 나면 걷는데, 많이 가는 곳은 순천대 뒤에 있는 난봉산입니다. 가끔은 조금 더 가서 국사봉까지 갔다 오기도 하고요. 그런데 낮에는 땀 흘린 상태에서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 부담이 있어서 자제하는 편입니다. 요즘에는 밤에 호수공원을 몇 바퀴 도는 날이 많습니다. 그 밖의 일상은 가끔 음악을 듣는 것 이외에는 대개 무미건조하게 보내는 편입니다. 악기 연주와 그림에 관심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실력은 별로고요.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