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한상준
저자 한상준

 

“아빠, 택배 올 거야. 받아둬.”
“알았어. 내용물이 뭐래?”
“신발.”
“신발장에 가득한데, 또 신발.”
“세계에서 오직 한 켤레만 있는 신발이야.”
“어이쿠, 이멜다다, 우리집 이멜다.”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가 축출될 때 대통령궁에 부인 이멜다의 신발이 3,000켤레나 있었다는 기사를 기억해 낸, 딸아이의 신발 수집 욕구에 빗댄 별명이다. 
“이거 알아, 아빠.”
“뭘?”
전화기 너머로 딸아이의 들뜬 음성이 전해졌다. 
“아디다스가 베트남 공장을 독일로 이전해 갔는데, 독일 공장에서는 단 한 켤레의 신발도 소비자 요구대로 만들어 준다는 거야. 세계 유일무이의 신발인 거지. 주문한 지 5시간 만에 디자인 샘플을 보내왔고, OK 사인 보내자마자 제작해서 7일만에 온 거야.” 
베트남에 있던 공장을 독일 안스바흐로 이전해 간 게 2016년이다. 고임금이 원인이었다. 
“항공택배네? 비싸겠다, 하나뿐이니?”
“매장에 있는 제품과 비교할 순 없지만, 그렇지도 않아.”
“서른이야, 이제. 신발 욕심을 아직도 못 버리면 어떻게 해. 놀고 있는 애가.”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부츠며 킬 힐, 군화형 구두 등이 없진 않으나 딸아이는 좀 특이한 운동화를 선호했다. 각양이고 각색인 30여 종의 운동화가 신발장에 진열되어 있다. 딸아이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한국인 신혼여행객을 주 대상으로 예약 사진을 찍는 사진사였다. 회사 대표와의 불화로 생긴 스트레스성 소화기 질환으로 그만두고 귀국했다. 5개월 째다.
“스피드 팩토리(Speed Factory)에서 제조하는 거라 가능해. 3D 프린팅, ICT와 연결된 생산 시스템인데, 전체적인 모형을 주면서 소재, 색상, 끈, 깔창, 밑창 등등을 선택 주문하면 돼. 로봇 생산이니까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거지.”
마침, 며칠 전에 읽은 ICT 연계의 제조업 관련 글이 떠올랐다. 
“근데, 너, 그거 알아. 베트남 아디다스 공장에서 일하던 600명 인원이 독일로 이전해 가면서 모두 잘린 거. 베트남 공장과 똑같은 분량을 생산하는데 10명이면 된다네. 숫자적으로는 590명이 일자리를 잃은 거야. 지금 너처럼.”
스피드 팩토리 공정은 로봇밀도 세계 1위인 한국 기업의 현실이기도 했다. 
“나는 내 발로 나온 거야, 아빠.”
“결과적으로는 590명 속에 있는 거잖아.”
“4차산업혁명 시대의 산물인 걸.”
“삶의 지속성이 어떻게든 주어진다면, 문제겠니?”
“청년수당? 기본소득제? 기대 안 해. 통장 바닥 전에 잔일이라도 하면 되지, 뭐.”
“젊어서야 그런다지만…. 베트남의 아디다스 노동자, 600명은 지금 뭘 할까?”
“너무 나가지 마, 아빠.”
‘당신의 일자리는 안녕하십니까?’라는 물음 없는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거 아냐? 하는 말은 입안으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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