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수난과‘인생송별회’④

 
아내는 순천에 내려오자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로 힘겨워했다. 내 혼자라 집에서는 아내를 돌보기가 벅찼다. 딸의 도움이 없이는 집에서 한시라도 지내기가 어려웠다. 거동이 불편한 데다, 아내의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일은 나로서는 전혀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딸이 오랫동안 입원할 일이 있어,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 했다. 그래서 나는 주치의와 의논해서 노인요양병원에 입원시키기로 했다.

입원은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졌다. 간병사가 있는 7인실 병실이었다. 가슴사진을 찍고, 심전도검사와 피검사를 하더니,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부정맥도 심하고, 혈당의 수치도, 혈압도 높다는 것이다. 담당의사가 적절한 치료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원장에게 말했다. “면밀한 진단을 거쳐서 낫고 살 수 없다고 판단되면, 생명의 연장치료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고통 없이 임종을 맞이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죽음에 대한 나의 입장을 아내에게 투사한 것이다.

아내는 처음엔 밥을 조금씩 먹다가 입맛이 점차 떨어져서 죽으로 바꿨다. 먹는 일 자체를 여간 힘들어 한 것이 아니었다. 입맛이 없다는 것이다. 화장실은 병실 안에 있어서 간병인이나 나의 도움을 받아 겨우 붙들려 다닐 수 있었다. 병실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일곱 환우가 들어서인지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똥오줌을 받아내느라 구린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시끄러운 게 거슬렀다. 소리도 줄이지 않는 채 티브이를 종일 틀어놓고 있었다. 그 안에 아내가 있었다. 본래 조용하게 지낸 편이라, 그 소음이 부담스러웠을 게다. 허지만 귀가 조금 어두운지라, 소리에는 크게 민감한 편이 아니어서 다행스러웠다.

문제는 아내에게 ‘불안신경증세’가 보이게 시작했다. 이것은 근년에 와서 앓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한 데 있었다. “만일 남편이 먼저 죽으면 나는 어떻게 살까?” “내가 먼저 죽으면 남편은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까?” 나는 그때마다 위안의 말을 들려주곤 했다.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죽던, 그것은 하늘의 소관이 아니겠소. 우리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으니, 하늘에 맡기고 사는 동안 서로 아끼고 위로하고 사랑하며 삽시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많이 호전되었다. 본디 아내는 젊었을 적부터 ‘암흑공포증’이 있어서 기차가 캄캄한 굴을 지날 적에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방에 불빛이 들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잠자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 아내가 갑자기 7인실 병실에 들어간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견디어 갔다. 그러나 달포 쯤 지나자 생각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기억력이 갑자기 떨어져서 지난날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만큼 나빠지더니, 방금 지난 일도 잊어버리곤 했다. 전날 누가 다녀갔는지도 몰랐다. 자신이 누워있는 자리가 병실인지도 몰랐다.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치매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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