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택의 ‘별나라 형제들’ (20)

▲ 박종택
본지 논설위원
“ ‘외계인과의 만남이 항상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는데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다. 좀 더 설명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계실 것이다. 오늘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저자는 ‘항상 계속되는 만남’을 지구인이 지각하지 못하는 까닭을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심리적인 면인데 의식의 분할구조 때문이라 하고, 둘째는 지구인의 좁고 고착된 집단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먼저, 의식의 분할구조가 무슨 말인가?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인간의 의식은 3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보통 생활하는 깨어있는 의식상태, 잠재적 의식상태, 그리고 무의식 상태가 그것이다. 심층심리학이 말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세 가지 의식 상태는 말하자면 한 집의 세 방처럼 서로 나뉘어져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집에 방이 A, B, C 세 개가 있다고 하자. 한 사람이 방 A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 버리면, 다른 방에 있는 가족은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동일한 집이지만 독립된 방이므로 문을 열어 보여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마음)도 비슷한 칸막이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서로 알 수 없고, 소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깨어있는 의식 상태로 살아가므로, 우리의 잠재의식, 무의식에 무엇이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밤에 잠을 잘 때 꾸는 꿈은 무의식의 작용이므로 참으로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으며, 우리는 꿈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 어렵고 그것을 통제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꿈을 꾸고 나면 낭패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둘째로 지구인의 협소하고 고착된 집단의식이 작용한다. 협소하고 경직된 집단의식은 일종의 필터 역할, 방어벽 역할을 한다. 다른 존재나 영역을 감지하지 못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예를 들면, 차를 타고 길을 가는데 짙은 안개가 끼어 있어 바로 가까이 있는 사물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라 하겠다. 사물(집, 나무, 동네 등)은 분명히 가까이 존재한다. 그러나 짙은 안개는 그것의 존재를 지각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외계인과의 만남을 지구인이 지각하려면 이상의 두 가지 장애물을 제거하면 될 것이다. 칸막이 구조화된 인간 의식을 통합하고, 경직되고 고착화된 집단의식에서 벗어나면 될 것이다. 둘 다 어떤 외부적, 기술적인 면이 아니라 내면적, 정신적인 면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다. 미국 NASA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외계 지성체와 접촉하려고 무슨 음파나 전자파를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 글쎄 부질없는 짓으로 보인다. 성서에 보면 예수는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했다. 하늘나라가 어디 머나먼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정신적 변화에 있다는 뜻이다. 천국이나 지옥이 머나먼 시·공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 상태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이제는 “그렇다면 심리적 칸막이 구조와 인류의 집단의식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길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해답은 인간의 잠재의식과 무의식에 있다. 일부 토착부족 사람들이나 원시부족의 샤먼들은 현대인들처럼 의식, 잠재의식, 무의식 간의 구분이 확실하지 않았다. 구분이 없지는 않았으나 칸막이 베일이 훨씬 성기고 투명해서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들은 의식으로 현실을 지각하듯이,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통해서 다른 실재(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이 다른 세계가 외계인과 말날 수 있는 공동의 장이다. 다른 세계(실재)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현대인의 의식은 그것을 지각할 수 없다.

지구인의 전반적인 집단의식이 일정한 임계점에 다다르면 지각(Perception)의 변화가 생긴다. 지구인의 현실관(perception of reality)이 바뀌면, 공동의 장이 열리고, 외계인과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마치 안개가 걷히면 거기 있던 사물이 드러나듯이 말이다. 눈만 뜨면 된다. 황홀한 광경은 항상 거기 있다.

 제 39호 - 201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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