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상상하라 다른 교육

 
내가 교육실습을 간 학교는 인근에서 이름이 높은 명문고였다. “우리 학교의 목표는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라는 교감 선생님의 단호한 선언처럼 ‘입시 대박’이라는 지상 최대의 목표 아래 학교는 일사분란하게 돌아갔다. 실습이 끝난 뒤 “앞으로 교사 할 거야?”란 흔한 질문에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혹여 30년 동안 어떤 성찰과 배움 없이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면 버틸 자신이 없었다. 가르치고 싶고 같이 성장하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도 여유도 능력도 없는 게 학교의 현실일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상상하라 다른 교육》을 읽게 됐다. 나의 빈약한 상상력으로 뜨겁게 꿈꿔 왔고 되고 싶던 교사의 모습이 여기에 있었다. 가르치는 사람이 무엇인지 더듬더듬 입이 열렸다. 학생과 평등한 관계에서 우정을 나누기, 본받을 수 있는 삶의 태도에서 오는 가르침, 탁월한 한 명보다 평범한 우리를 소중히 여기기. 그런 교사가 된다면 나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자 가르치는 사람으로 행복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교육공동체 벗에서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9개의 강연을 엮어 만든 책 《상상하라 다른 교육》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 엄기호, 이혁규, 정용주는 교육과 학교를 낯설게 보면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 뒤 가르치는 자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시도한다. 2부에는 김수현, 류명숙, 이영주, 세 교사가 학교와 학급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관행들에 흔들리면서도 모른 척 무마하기보단 정면으로 맞서길 택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3부 ‘아웃 오브 스쿨’은 학교 밖으로 눈을 돌려 학교와 교육의 근간을 되물으며 공교육에 매몰된 좁은 사고를 깨라고 추동한다. 독자들은 집과 노동, 자립과 사회, 지역으로 교육을 확장시키면서 넓어진 상상력을 기반 삼아 학교란 틀 밖의 더 큰 질서로 초대된다.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나 인식에 새로운 변화를 주는 문구를 만날 때마다 밑줄을 긋자 책이 형광펜으로 알록달록해졌다. 어느 구절에선 무릎을 탁 치며 이치를 깨달은 듯 뿌듯하다가 어느 구절은 아직 내공이 부족해 벅차기만 하다. 초짜 구도자가 산속에서 수련하던 중에 우연히 레벨 측정이 불가한 ‘비기의 서’를 습득해 읽은 기분이다.

끊임없이 상상과 불온을 전파하는 이 책의 저자들은, 실은 처음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끊임없이 다른 교육을 상상하라는 부추김에 확인한 ‘다른 교육’의 얼굴은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이상적인 교육의 얼굴과 판박이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같이 배우고 성장하는 관계, 기다려 주고 보듬어 주는 교육적인 학교 문화, 학벌과 부모의 조력 없이도 자기의 삶을 개척하는 힘을 가진 학생. 잊고 있던 것들을 하염없이 건드려 주니 불편하기도 당혹스럽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건 세상에 없는 줄 알고, 안 되는 줄 알고 낙담한 채 그럭저럭 현실과 불편한 연애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는 이상의 교육을 직접 만나고 백년해로 중이었다는 유쾌한 뒤통수를 담은 게 《상상하라 다른 교육》이다. 어떻게 하다 여기까지 왔는지, 왜 이제야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먼 길을 돌아 너와 만났구나. 내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을 와락 안아 주고 싶다.

불온함이 가슴에 번진 덕에 나는 교사를 꿈꾸게 됐다. 제도권 교육 혹은 사범대에서 느꼈던 교육과는 다른 세상이 있음을 이제 안다. 여러분도 각자가 상상한 다른 교육과 지금 여기서 함께하길 응원한다. 지금 여기서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말이다.

방은아 예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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