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용창
행정학 박사
세월호 사고와 관련하여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난 5월 19일 대통령이 강도 높은 행정 개혁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신뢰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에 저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하야가 그런 대대적인 개혁을 상징할 수 있다는 것에도 저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인정하는 또다른 형태의 사고방식일 뿐입니다. 이런 사고는 우리에게 뿌리 깊은 수호자주의 사고방식에서 나옵니다. 이 글에서 수호자주의가 왜 위험한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미국의 원로 행정학자인 로버트 달이라는 사람은 우리말로도 번역된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이라는 책에서 수호자주의(Guardianship)야말로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니, 도대체 수호자주의가 뭐길래 공산주의보다도, 반공주의보다도 더 민주주의를 위협할까요? 수호자주의는 ‘국민을 지켜주는 수호자가 국민을 다스려주면 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2500년 전 플라톤이 제기했던 ‘철학자가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 속에도 수호자주의가 들어 있습니다. 2600년 전 공자가 제기했던 ‘군자가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 속에도 수호자주의가 들어 있습니다. 동서양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이 두 주장을 간단히 말하면, “미개한 백성들은 가만히 있으라. 똑똑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다스려주면 된다”라는 것입니다. 세월호에서 학생들을 죽게 만들었던 그 방송이랑 너무 비슷하지 않나요?

수호자주의는 민주주의의 정반대입니다. 민주주의는 ‘어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고 더 도덕적이라고 믿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스스로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에 반해 수호자주의는 남들보다 더 똑똑하고 더 도덕적인 누군가가 다스리는 게 낫다는 생각입니다. 지금도 수호자주의는 전문가주의, 엘리트주의 등의 형태로, 심지어 민주주의 국가에도 만연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은 너무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지 않기 위해서 만들어낸 삼권분립이라는 아름다운 장치가 한국에선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대통령은 행정부의 잘못을 감사하는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의 임명권을 가지고 있으며, 대놓고 국회의원들까지 사찰하는 국정원장의 임명권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 등 사법부 수장의 임명권도 가지고 있으며, 당권도 장악하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입법부인 국회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삼권분립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무능과 부패는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고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문제를 개선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권력을 대폭적으로 사법부와 국회로 이양해야 합니다. 감사원을 국회 밑에 두고, 감사원장을 국회에서 임명해야 합니다. 검찰과 국정원이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고, 국회의 통제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서 헌법에 명시해야 합니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의지로부터 독립적으로 임명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서 헌법에 명시해야 합니다. 이런 개헌이야말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함으로써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세월호 사고와 같은 불행의 가능성을 낮추는 길입니다. 대통령이 물러난다 한들, 더 나은 대통령이 그 자리에 앉으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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