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하고 신뢰하면 우리의 경제 만들 수 있다”

순천광장신문이 창간 1주년을 맞았다. 2012년 11월 7일 지역에 언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순천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10여 명이 4개월 동안 준비했다.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는 책을 교재로 선정해 공부하고, 협동조합으로 신문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책 서문에 한겨레신문 김현대 기자가 쓴 ‘협동조합으로 언론을 만드는 것’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시도된 적 없던 협동조합 언론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협동조합 언론인 순천광장신문 창간 1주년을 맞아 다시 김현대 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김현대 기자는 현재 한겨레신문에서 활동하면서 ‘사회적경제 언론인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사회적경제 언론인포럼’은 신문과 방송에서 사회적 경제 분야를 보도하고 있거나 관심이 있는 언론인들이 모여 운영하고 있다.
 

▲ 김현대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 사회적경제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2010년부터 평생 농업기자의 꿈을 꾸었습니다. 한겨레경제연구소에서 일하는 동안 마을만들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농업과 농촌에 애정을 갖게 됐지요. 흔히 ‘농업은 답이 없다’는 말을 하잖아요. 제가 기자로 일하다 보니,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의 농업 현장을 다닐 기회가 많았습니다. 선진국 농업을 떠받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올까? 유럽이나 미국이나 오세아니아 지역이나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협동조합이었습니다. 협동조합이 가족농 중심의 농업 경쟁력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은 농업과 농촌 분야의 협동조합이었습니다. 2012년에 후배 언론인들과 공동으로 집필한 ‘협동조합, 참 좋다’라는 책에서도 해외의 잘 나가는 농업협동조합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은 협동조합을 넘어 사회적경제 전반을 알리고 확산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 ‘사회적경제언론인’ 포럼은 어떤 활동을 해 왔습니까?
우리는 매달 한차례 사회적경제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관련 현안을 놓고 토론을 벌입니다. 특정 분야의 언론인 사교 모임이 아니라 정기적인 공부 모임을 갖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일입니다. 비슷한 언론인 모임으로는 저희보다 1~2년 앞서 시작한 한국농업기자포럼, 식품기자포럼이 있습니다.

주로 아침에 김밥을 먹으면서 포럼을 엽니다. 분기에 한차례 정도는 넉넉한 저녁시간에 모임을 갖습니다. 포럼 때마다 회원들이 1만원 회비를 내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회 포럼 초청 인사였고, 가장 최근 포럼에는 유승민 새누리당 사회적경제 특위 위원장을 모셨습니다.
 

협동조합은 공존의 기업

▶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 이후  많은 협동조합이 설립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불과 1년 여 사이에 4000개 넘는 협동조합이 생겨났습니다. 지금도 매일 10개의 새 협동조합이 설립되고 있습니다. 기적같은 일입니다. 협동조합이라 할 수 없는 협동조합도 많지만, 결국에는 공동체 또는 지역에 뿌리를 둔 경제가 생겨나는 단초를 마련하고, 풀뿌리민주주의의 토양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 내면에 응축된 욕구가 협동조합으로 분출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협동과 신뢰의 힘으로, 우리의 기업, 우리의 경제를 만들 수 있다는 데에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근대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지만, 부정과 갈등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존의 기업이고, 긍정과 평화의 에너지를 담고 있습니다. 노동자, 소비자, 소상인, 농민이 자신을 위한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꾸려갈 수 있다는 구체적인 전망을 보여줍니다.

또 협동조합을 통해 조합원들은 민주주의 방식으로 경영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투고 깨지고 엎어지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소중한 싹을 틔워나갈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이 협동조합 시대의 더없이 소중한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 사회적 경제 전문기자로서 협동조합에 조언해주실 것이 있다면?
협동조합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쩌면 많은 협동조합이 단기간에 잘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협동조합적이지 못한 발상일 겁니다. 협동조합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이고, 1인 1표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경영하는 기업입니다. 더 어렵고 까다로운 기업입니다.

저는 염원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것을 공동의 염원으로 잘 모아내야 합니다. 절실한 필요에 공감할 때 염원이 모아질 수 있겠죠.

3년 전 협동조합 알리는 기사를 처음 쓸 때는, ‘협동조합은 기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제는 ‘협동조합은 공동체’라는 점을 그 못지않게 부각시키려고 합니다. 협동조합을 처음 시작할 때는 공동체의 가치를 앞세우지만, 어느 순간부터 ‘돈벌이’에만 매몰되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됩니다. 물론 경영을 잘 하지 못하면 협동조합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가치가 흐릿해지면 왜 협동조합을 하는지 이유가 불분명해지고, 결국 내부갈등으로 치달아 자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잘나가던 협동조합이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가 ‘조합원의 이질화’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역신문은 이웃의 삶에 뿌리 둬야

▶ 언론분야 협동조합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협동조합 언론이 설립되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경영위기에 처한 언론사를 직원들이 인수하는 경우입니다. 노동자협동조합 언론사를 세우는 거죠. 또 하나는, 언론의 가치를 구현하기에 적합한 기업의 형태로 협동조합을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한겨레신문사가 사실상의 협동조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6만 명의 시민이 한겨레 설립에 참여했는데, 법적으로는 주주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조합원인 셈이죠.

올곧은 신문사를 세우자는 게 목적이라 볼 때, 한겨레는 사회적협동조합 성격이 짙습니다. 직원들의 1인 1표로 대표이사를 선출한다는 점에서도 협동조합이죠. 지금 한겨레가 태어난다면, 당연히 협동조합을 선택했을 겁니다. 지난해에는 프레시안이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했습니다. 광고주로부터 독립해 진정한 언론으로 거듭나야겠다는 염원을 협동조합에 담았습니다.

마지막은 순천광장신문 같은 지역언론입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신문사들이 문을 닫고 있지만, 이웃의 삶에 뿌리를 둔 지역신문들은 경영안정을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상하게 담아내고, 지역 정책의 잘잘못을 충실히 꼬집고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신문사는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순천광장신문이 협동조합 신문으로서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역주민의 참여와 지지를 끌어내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 협동조합이죠.
   조합원이 기자로 일하고, 취재원으로 응대하고 제보하며, 고객으로 신문을 구입하고, 광고주로 광고를 게재하는, 그런 지역의 협동조합 언론사를 만들어낸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순천광장신문이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그런 장점을 잘 살려내자면 민주주의 운영의 비효율과 내부갈등을 이겨내야 합니다. 어렵더라도 사이좋게 지냈으면 합니다. 생각이 다르고 어제는 다퉜더라도, 오늘은 순천광장신문에서 함께 일하는 성숙한 협동의 문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봤던 캐나다의 한 유기농 생협 가게는 12명의 엄마들이 15년 동안 냉장고 없이 운영하면서 17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습니다. 지금은 1000명 가까운 조합원을 확보해 알차게 작은 가게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최대 아웃도어 업체로 성장한 등산장비협동조합(MEC)은 산악부 대학생 6명이 1971년에 설립했습니다. 7년 동안 무보수로 일하면서 한명 한명이 늘어 지금은 700명의 조합원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쌓은 신뢰의 힘이 이후 폭발적인 성장의 발판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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