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윤호
문학박사, 순천교육공동체공동대표
만발한 봄꽃들의 행진으로 축제와 행사가 이곳저곳에서 줄을 잇는다. 그런데 꽃은 왜 필까? 막연한 질문이라고? 그렇지 않다. 우리는 왜? 라는 질문을 잃어버린 채 꽃구경을 다닌다. 아이들의 답은 순진무구하다. ‘예쁘라고요’ ‘향기 나라고요’ 맞다. 예쁘고 향기난다. 그런데 왜 예쁘고 향기나냐고? 말문 막힌 아이들과 사계절 여행을 시작한다.

꽃이 피고 꽃이 지면 뭐가 태어나지? 열매요. 그래, 꽃받침대 밑에는 열매가 맺기 시작했지. 아하!. 여름엔 비가 많이 오고, 햇빛도 쨍쨍이란다. 왜 그럴까? 열매들도 나무들도 쑥쑥 크라고요. 그렇지. 그래서 가을에 한 움큼 큰 열매가 맺는구나. 열매는 왜 열리는 건데? 우리 먹으라고, 하하. 그래 먹어서 그 속 씨앗을 다른 곳에 여행 보내서 그 곳에서 종족을 번식하는 속셈이 있었네. 봄꽃은 벌과 나비를 예쁨과, 향기로 불러들여 수정을 하자는 것인데, 벌과 나비보다 상춘객들이 꽃구경 다니기 바쁘기만 하니, 아이러니 하다.

인문학의 개론을 봄꽃에 비교해 보았다. 왜 인문학이 대세일까? 人文學을 한자풀이로 하자면, 사람의 글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문학자들은, 사람의 길을 찾는다, 라고 한다. 그 길을 철학자들에게서 주로 찾으려한다.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 말은 소크라테스의 말이 아니었다. 전해오는 말을 자주 인용했다는 것이고, 그는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제자들에게 강론했다. 겸손으로 사람의 길을 인도한다.

공자는 사람 인(人)을 강조했다. 논어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어질 인(仁)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로 함께하는 사람에게 배려의 예를 지켜야 살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적으로 예를 갖추려 한다. 예의범절, 제사, 성묘 등

석가모니는 불경에서 자비를 강조하고, 예수는 성경에서 사랑을 가르쳤다. 철학자들의 공부 방법은 강론이 아니라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토론식 학습법이었다. 또한 직접 저서를 쓴 적이 없다. 감동받은 제자들이 스승의 고언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 수 천 년을 지난 오늘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철학은 어렵다. 그래서 요리사가 필요하다. 집에서 온가족의 영양을 책임지는 건 어머니이다. 정신세계의 맛깔스러움, 재미나고 신나는 음식 제공은 작가들의 몫이다. 문학가들은 철학과 역사의 재료로 열심히 요리하여 독자들의 입맛과 정신세계의 영양분을 공급한다. 그 중 고영양분의 책을 우리는 고전이라 부른다. 대개 30년 이상 꾸준히 읽혀져 온 책을 학자들은 고전이라 부른다.

서울의 경수중학교에서는 대학교수들을 초빙하여 매주 철학수업을 진행(경향신문, 3월 19일자)하고 있다.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많은 학교는 새벽부터 밤 늦도록,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입안에 지식을 부어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화장실 앞에 CCTV를 설치하고, 스마트 폰과 위치 추적기를 달아서 아이들을 관리하고 행방을 감시하며 길들인다. 

 최초의 학교를 연 사람은 공자였다. 그는 ‘때때론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로, 공부가 기쁘다고 말한다. 우리들의 학교는 즐겁고 재미있을까?

철학은 재미있게, 즐겁게, 신나는 학교를 창출한다. 창의력, 창조성을 추구하는 철학이 인문학의 길이다. 중학교에서 철학수업을 하는 한 교수는 ‘같은 나무라도 어느 땅에 싹을 틔웠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자라듯 아이들도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인문학은 선 지식이 필요 없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으므로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 ‘인문학은 자신이 아닌 모두를 위한 공부’다. 우리 지역의 아이들이 인문학을 통해 자신을 사유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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