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회관에서나 접할 수 있는 첼로 연주를 우리 마을에서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마을의 남녀노소가 저녁 식사 후 마실 나온 기분으로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첼로연주와 노래를 만나는 예사롭지 않는 광경이 3월 21일 저녁 조곡동 철도마을카페 기적소리에서 펼쳐졌다. 카페 기적소리가 매월 셋째주 금요일 저녁 준비하는 작은음악회 현장이다.

저녁 7시가 가까워오자 초등학생 손은 잡은 어머니부터 마을의 70대 어르신, 미용실 원장, 직장인, 주부 등등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로 카페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마을에서 연주하다!
화려한 무대에 성능좋은 음향시설도 갖추지 않는 카페 기적소리의 첫 작은음악회에 선뜻 재능기부를 하겠노라고 한 이는 프랑스에서 첼로를 공부하고 각종 콩쿨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고향인 순천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첼리스트 허란(29)씨다.

첫 무대는 허란씨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프렐류드(Prelude)와 사라방드(Sarabande)로 시작했다. 평소에 첼로 연주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낮고 웅장하게 가슴을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첼로는 사람의 심장 가까이에서 울리는 소리이며 사람 목소리와도 가장 가까운 소리를 내는 사람을 닮은 악기라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커피머신 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웅성웅성 이야기하는 소리를 뚫고 나온 첼로 연주에서 묘한 마력이 느껴졌다.

초등학생 아이의 손을 잡고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모녀의 시선은 무대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세 번째 연주는 체코 민족음악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스메타나의 몰다우강이었다. 자기 조국을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이 곡은 유럽의 민주화와 연관이 많다고 한다. 특별히 국민철도를 지키기 위한 파업투쟁으로 해고되고 징계당한 철도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해 선곡했다는 허란씨의 이야기는 더욱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우리가 언제 요런 것을 만나것어!
기적소리의 작은음악회는 전문적으로 음악을 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음악인, 음악을 배우는 학생과 일반인에게도 열린 무대이다. 기타 학원을 운영하며 매주 순천역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 김시중씨는 본인이 좋아하는 김광석의 노래로 재능기부를 했다. 깊은 첼로의 선율에 이어 김시중씨의 하모니카 연주와 노래로 활기찬 기운이 카페 곳곳에 넘쳐흘렀다. 순천역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섭외를 당했다는 김시중(29)씨는 “이런 자리에 서게 된 것도 제겐 영광입니다.”라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뒤이어 등장한 허란씨는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 선곡했다며 양희은의 한계령과 아리랑을 연주했다. 이번은 혼자가 아니었다. 철도 해고자인 이영종씨의 기타 반주와 함께 멋진 협연을 해 주었다. 한계령이 흘러나올땐 모두들 작은 목소리로 따라 불렀고, 흥겨운 아리랑 연주에 경로당에서 오신 어르신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손장단을 맞추기까지 했다.

음악회 중간엔 조곡동 철도관사마을 철도 퇴직자들과 가족들의 삶을 담은 책자 ‘철도관사마을 주민구술생애사’를 편집한 영상도 비춰져 철도관사마을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부부가 함께 참석한 정종필(78세), 오태례(68세)씨는 “좋구마. 동네에서 이런 기회가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요런 것을 만나것어. 커피값 3,000원만 가지고 오면 되잖아. 담 달에도 우리 경로당 할머니들한테 꼭 같이 가자고 해야 겠어.”라며 자리를 일어섰다.


카페가 서고 나서 마을이 진짜 많이 변했구마!

조곡동 철도관사마을은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몇 안되는 가게 불빛이 꺼지면 어둠에 잠기는 그런 동네였다고 한다. 그런 마을 초입에 철도노조가 노조사무실 한 켠을 내어주고, 철도노동자들이 출자금을 모아 지역 주민과 나누고 소통하며 살기 위해 마을카페를 만든 것이다.

“카페가 생긴 뒤로 마을 분위기가 확 바뀌었구마. 시내로 안가고 우리 동네에서 커피도 마시고 모임도 하고, 저녁에도 동네가 환해서 좋아.”라며 마을 주민들이 이야기하신다.

 
매월 셋째주 금요일 작은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는 조종철 호남철도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이야기한다. “문예회관 같은 공연장을 가지 않아도 우리 마을에서 음악을 접하고 문화를 만나게 하고 싶다. 철도문화마을 하면 떠올려지는 아이콘이 될 수 있도록 작은음악회를 만들고 싶다. 노래, 연주하고 싶은 분들은 누구든지 설 수 있는 기적소리 작은음악회에 많은 분들을 안내해 주면 좋겠다.”

마을카페로 인해 마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작은 변화를 알리는 기적이 울리고 있다. 아니, 오래전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이 흥겹게 노닐었던 따뜻한 공동체의 숨결이 마을에서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4월 작은음악회는 18일 저녁 7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가수였던 견명인씨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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