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 순천복음교회 정원 탐방

빼어난 수목과 수석, 시내와 연못, 오솔길의 조화

순천의 새로운 명소
바야흐로 매화의 계절이다. 여기저기서 매화꽃이 다투어 터지고 있다. 곧 남도 꽃잔치가 펼쳐질 것이다. 광양 다압 청매실농원 주변은 두말할 나위 없는 매화축제 명소다. 보해양조에서 직영하는 대규모 농원(50여만㎡, 해남군 산이면)도 유명하고, 순천 월등 향매실마을 매화꽃 축제도 손꼽을 만하다. 그러나 그곳은 꽃이 아닌 열매를 생산하기 위해 조성한 농원·농장이다.

▲ 100살이 넘은 홍매와 백매가 수십 그루 장관을 이뤄 봄소식을 전하고 있는 매화정원. 수령 600년을 헤아리는 ‘영암매’는 노태미가 남다르다. (2013년 봄, ⓒ공영호)
매실이 아닌 오직 꽃을 완상하기 위해 조성한 매화정원이 순천에 선을 보였다. ‘순천복음교회 매화정원’(이하 매화정원)이 그것이다. 매화정원은 송광사, 선암사, 낙안읍성, 순천만과 함께 순천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를 것이다. 단언컨대, 순천의 명소를 넘어 전국의 명소로 각광받을 것이다. 전국 최초의 본격 매화정원이자 일정한 규모를 갖춘 국내 최고(最高)의 매화정원이기 때문이다.

‘매화정원’을 일생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20~30년 동안 공을 들인 순천복음교회 양민정 목사(66세)를 2월 21일, 22일 이틀에 걸쳐 만났다. 양 목사는 “매화나 동백의 북방한계선이 전북 내장산 정도이기 때문에 남도(南道)만의 꽃과 나무로 특색 있는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1천2백평 남짓의 정원에는 홍매화 수십 그루가 색상이 약간 씩 다른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예배당 입구 왼쪽에는 운용매(雲龍梅, 수령 50~60년)의 하얀 겹꽃이 만개해 있었다. 홍매보다 운용매가 1주일 쯤 먼저 꽃을 피웠다고 한다. 백매와 청매는 입을 오므린 꽃봉오리를 달고 날이 좀 더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 홍매와 백매의 대비는 일품이다. 정원 가운데 오솔길을 중심으로 왼쪽은 홍매, 오른쪽은 주로 백매다. 그러나 홍매 속에 백매가 있고, 백매 속에 홍매가 있다. (2013년 봄, ⓒ공영호)

백매, 청매, 홍매, 비매, 운용매, 수양매까지
정원에는 매화, 돈나무, 단풍, 동백, 산다화, 소나무, 대나무 등 7종 330여 그루가 식재되어 있다. 벚나무도 두 그루 있다. 그중 매화가 177주로 가장 많은데 백매는 45주 홍매가 130여 주(고매 1주)에 이른다. 매화는 화륜의 크기, 화형, 화색, 향기의 농담, 홑겹 등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인다. 매화정원에는 홍매, 청매, 백매, 흑매, 비매(緋梅=비단매화), 오색매, 능수홍매, 능수백매, 운용매 등 15종의 다양한 매화가 자리하고 있다. 백매는 수령 100년을 지난 고매(古梅)가 37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확한 수령을 알 수 없지만 국내에서 최고(最古)에 속하는 선암매(600여년)에 비견할 만한 ‘복음매’는 단연 발군이다. 구입에서 가식, 정식까지 수천 여 만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1억짜리 매화라고 부른다. 장흥에서 이사 온 홍매(장흥매)는 화엄사 고매(흑매)에 견줄 만한 수령(약350년)을 자랑한다.

▲ 연분홍색, 분홍색, 비단색, 검붉은색, 흰색 등 각양각색의 매화가 제각기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초봄은 시각의 계절이요, 도약과 비상의 계절이다. (2013년 봄, ⓒ공영호)

사계절 내내 꽃을 감상할 수 있는 정원
매화만 심은 정원은 아니다. 정원은 춘하추동 사계절 내내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봄에는 매화다. 교회당 정문 왼쪽에 커다란 수석과 함께 서 있는 운용매가 2월 초순경 가장 먼저 불을 댕긴다. 이어서 홍매, 청매, 백매 등이 연달아 꽃을 피워 3월 중순 경까지 1달 보름 가까이 매화를 감상할 수 있다. 모든 매화가 이운 다음, 매화로서 맨 마지막 꽃을 피우는 것은 정원 왼쪽 담장 부근에 있는 겹홍매(장흥매)다.

여름에는 돈나무다. 정원에 돈나무가 9그루 있다. 남해안과 섬에 자생하는 돈나무는 흰 꽃을 피운다. 아카시꽃이나 치자꽃 향기보다 자극적이지 않은 향기가 은은하여 기막히다. 여명과 석양에 더욱 아름답다. 한여름에는 목백일홍(배롱나무)이다. 여행객들에게 남도의 여름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하는 붉고 흰 배롱나무 꽃은 가을 추수 때까지 간다. 정원에는 가격이 1천만 원에 이르는 목백일홍 2주를 포함하여 수십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다.

가을은 단풍이다. 단풍 색깔이 곱고 수형이 빼어난 것으로만 골라 55주를 심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흔치 않은 황피단풍도 있다.

겨울에는 동백과 산다화다. 남도에서만 자라는 이들 나무는 삭막한 겨울에 붉은 꽃을 피워 올려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12주의 동백은 붉은색 하얀색 분홍색 꽃을 피우는 20여 종의 산다화와 함께 정원에 산다. 겨울을 대표하는 나무로 소나무와 대나무도 빠질 수 없다. 수고와 수형이 정정한 문인송 40여 그루는 한국의 정서를 대변하는 나무다. 그들과 더불어 예배당 앞에 서있는 반송 두 그루는 몸값에 어울리게 특히 준수하다. 대나무는 오죽인데, 예배당 왼쪽 옆에 군락을 이루어 대밭이 되었다. 느티나무도 5그루 살고 있다.

수석 애호가가 꾸민 정원답게 총 24점의 수석이 정원 곳곳에 조화롭게 놓여있다. 2~4톤 정도의 수석들인데, 형과 색, 재질 등을 고려하여 적소에 배치했다. 국내산 수석 외에, 브라질 아마존산, 인도네시아산, 필리핀산이 섞여 있다.

계류와 지당…정원의 백미
개울과 연못은 정원의 백미다. 정원에 처음 갔을 때, 정원과 계류(溪流)가 10년 이상 된 줄 알았다. 만든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개울은 10년, 20년 전부터, 아니 원래 그 자리에서 그렇게 흘렀던 것처럼 천연스러웠다. 계류는 산 속의 계곡 같기도 하고 오래된 도랑 같기도 하다. 강돌이 아닌 월등 계곡의 산돌을 구해 만들었다. 시멘트로 반듯하게 만든 도랑이 아니라 울퉁불퉁 비정형이면서 깊음과 얕음도 똑같지 않다. 예배당 오른쪽 앞에서 시작한 계류는 굽이돌기도 하고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면서 홍교형(虹橋形) 돌다리를 지나 입구 왼쪽의 지당(池塘)으로 흐른다. 교회 입구 큰 길 쪽에서 볼 때, 정원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대각을 이루며 흐르는데, 그 곡선과 배치가 예술이다. 자연스럽기 이를 데 없다. 경탄이 저절로 새어나온다.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에서 모티프를 따왔다고 한다.

▲ 예배당 앞에서 본 계류(시내)와 매화정원. 여기서 발원한 물이 계곡을 굽이돌고, 다리 아래를 지나 지당(못)으로 흘러든다. (2013년 봄, ⓒ공영호)
▲ 계류가 마침내 도달한 지당. 못의 형태가 자연스럽고 석조 투각 십자가가 인상적이다. 지당 주변의 홍매 27그루가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은 듯하다. (2013년 봄, ⓒ공영호)
계류가 마침내 도달한 곳은 지당이다. 산과 들을 지나 강으로 흘러든 물은 드디어 평화의 바다에 이른다. 못에서는 평화롭고 고요한 정밀(靜謐)의 미가 흐른다. 아담한 못에 담긴 맑은 물이 주는 차분함, 못 물 속에 발을 담근 채 서 있는 석재 투각 십자가(두 개의 돌로 만든 투각 십자가는 도대체 누가 구상한 것인지,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단순하면서 성스러운 작품이다), 십자가를 향해 일제히 머리를 숙인 지당 주변 27그루의 홍매화가(주로 능수매) 어우러져 조용히 뿜어내는 지극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거룩하게 한다.

곡선과 느림의 미학…오솔길
입구에서 예배당에 이르는 진입로도 걸작이다.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길을 내면 100미터쯤 되는 거리다. 그 길을 굽이굽이 돌고,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도록 하여, 100리 길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곡선과 느림으로 사색을 유도하고 있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 지당을 옆에 끼고 매화를 감상한 후, 돌다리를 건너 호젓한 오솔길을 걸어올라 소나무 숲을 통과해야 예배당에 이를 수 있다. 고즈넉한 길을 천천히 걷고서야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길에는 벽돌이나 침목, 자연석을 쓰지 않고 석재공장에서 나오는 작은 화강암(쑥돌) 파석을 사용했다. 눈이 지루하지 않게 드문드문 붉은색(대리석)과 검정색(오석) 파석도 섞었다. 오솔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다. 숲 속엔 앉아 쉴 수 있는 돌의자를 듬성듬성 놓았다.

기품과 격조가 있는 매화정원
“1년을 입어도 10년 된 듯한 옷, 10년을 입어도 1년 된 듯한 옷”이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매화정원을 보며 그 카피가 생각났다. 조성한 지 서너 달 후에 처음 들렀을 때도, 1년 반쯤 지난 이번 봄에 들렀을 때도 매화정원은 10년, 20년 쯤 전에 만든 정원 같았다. 인위로 조성한 공간이지만 사람의 손길을 잘 느낄 수 없는 정원이다. 지극한 자연스러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자연에 가까운 정원이다. 그리고 매화정원에는 품위와 격조가 있다. 자연스럽되 난잡하지 않으며 단순하되 단조롭지 않다. 다양하되 호화롭지 않다. 균형과 조화, 절제와 파격의 미가 녹아 있다. 전체와 부분을 세심하게 배려한,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이다. 매화정원은 사람이 만든 아름다움의 절정 중 하나이다.

문수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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