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검은 베레모의 체 게바라,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 아바나 시가 등으로 기억되는 쿠바. 쿠바에 대한 요즘 우리들의 관심 분야는 자연농법과 함께 의료 시스템입니다. 2010년 출간된 『또 하나의 혁명, 쿠바 일차 의료』에서는 "진료소 환자의 30%가 고혈압이지만 약을 복용 중인 사람은 거의 없고, 식이조절과 운동요법을 통한 혈압 조절에 쿠바의사들이 진지하게 임하고 있으며 좀처럼 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알려줍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2011년에 나온 심평원의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2005년에 비해 2008년 고혈압으로 입원하는 비율이 34.3%가량 늘어났습니다. 2009년 보고된 자료에 의하면 10년간(1995~2005년) 건강보험 총 진료비 중 고혈압 진료비는 9배로 늘고, 유병률이 1995년 3.3%에서 2005년 10.1%로 3배 증가했습니다. 급기야 2012년에는 30세 이상 고혈압 유병률이 29%에 이르렀습니다.

쿠바에서는 약을 사용하지 않고 고혈압을 관리하는데, 한국에서는 고혈압 환자가 계속 증가하여 3명 중 1명이 환자가 되었고 진료비는 9배나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많은 해석이 있지만 의료 시스템의 차이가 관건입니다. 의료 시스템이 공공 의료 중심인가, 아니면 사영 의료 중심인가 하는 차이가 핵심입니다.

2013년 보건복지부가 만든 자료에 의하면 한국 공공 의료 비중은 기관 수 기준 5.8%, 병상 수 기준 10%에 불과합니다. 이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것으로, 병상 수 기준 영국 100%, 호주 69.5%, 프랑스 62.5%, 독일 40.6%이며, 사영이 우선인 미국조차 26.4%, 일본 24.9%에 이릅니다. 이런 수치보다 현실에서 한국의 공공 의료는 더욱 왜소합니다. 왜냐하면 공공 의료에 포함되는 국립대학 병원 등은 사영 병원과 동일한 이윤 추구 형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에서 의료 시스템의 차이는 매우 두드러집니다. 왜냐하면 만성질환은 의학적 치료보다 생활상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고혈압을 보이고 있는 환자의 생활 속 위험요소를 찾아 관리하는 서비스는 영리 병원에게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사영 의료 시스템은 한 번이라도 더 많이 투약하고, 한 번이라도 더 입원 처치 등을 해야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입니다.

사영 의료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위와 같은 직접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환자를 의료 행위의 객체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환자는 고혈압에 대처하는 방법이 혈압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잊어버리지 않고 병원에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고혈압은 생활 관리가 더욱 중요합니다. 이 말은 다른 무엇보다 환자 자신의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규칙적인 운동으로 정상체중을 유지하고 기름진 음식을 멀리하고 채소를 자주 섭취하며 싱겁게 먹고 담배와 술을 줄이는 것 등은 누구나 해야 할 기본 사항입니다. 이러한 기본 사항을 꾸준하게 관리하기 위해 그렇게 못하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의 해결책을 환자와 같이 모색하며 주변 관계망을 조정하는 등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환자 개인의 의지에만 의존하지 않고 공공 의료 시스템으로 포섭되어야 합니다. 공공 의료 시스템은 고혈압과 같은 만성 질환 환자를 ‘개인’이 아닌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웃’으로 만드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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