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져가는 집-시골동네슈퍼-와온슈퍼 이일선씨

 
와온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아는 장소가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는 와온슈퍼다. 10년 넘도록 한 자리에서 사람들을 반기는 와온슈퍼 주인장 이일선씨(45세)를 만났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시작한 슈퍼를 그 아들이 스물 한 살이 되도록 하고 있다. 횟집과 슈퍼를 겸해서 했던 그녀의 작은엄마가 슈퍼만 따로 넘겨준 것이다. “남 주자니 그렇고 한번 해봐라” 는 권유를 받은 날이 2001년 8월 10일 목요일이었다. 느닷없는 제안에 다음날 같은 아파트 사는 언니랑 점을 보러 갔다. 점쟁이 예언은

 “큰돈은 안 되고 살림에 조금 보탬이 될 만은 하겄그마.”

그 말을 믿고 슈퍼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토요일 물건들이고 곧바로 장사를 시작했다. 며칠 사이에 번개 불에 콩 볶아 먹듯 인생의 행로가 바뀌었다. 

장사를 시작한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슈퍼에 물건이 거의 없다가 젊은 사람이 슈퍼를 열고 물건이 무더기로 들어오니 동네 사람들이 구경삼아 왔다. 누가 누구 인지도 모르고 물건 값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시작된 장사가 제대로 되었을 리 없었다.

“이거 가지 가네~ 외상 달아 노소~”

물건을 가져가는데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팔았다. 처음에는 외상 장부에 적지 못해 외상값을 받지 못하기도 다반사. 담배 장사는 하필이면 꼭 바쁠 때만 왔다.

후딱 담배를 내려주고

“얼른 계산해서 돈을 달라”고 했다.

돈을 세다가 돈 달라는 말에 냉큼 드리고 한 것이 나중에 보면 돈이 더 가기도 했다. 확인해서 다시 돌려받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서툴던 장사가 13년째가 되니 이젠 전문가 수준이다.

시골 동네 슈퍼에서 제일 잘나가는 상품은 담배, 술, 그다음이 빵과 음료다. 바다 일을 하는 사람들 간식으로는 빵과 음료가 최고다. 옛날에는 담배만 받아다 팔아도 장사가 되었다. 담배가 세금도 없고 이익이 제일 많이 남아 담배하나에 아이 둘을 키웠다고 했을 정도였다. 이제는 겨우 몇 푼 버는 정도다. 그렇다고 문을 닫을 수도 없다. 슈퍼를 찾아오는 손님들과는 이미 친구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좋아서 계속 만나고 싶어서도 못 닫는다.

▲ 와온바다에 온 사람들은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슈퍼에서 막거리 한잔 걸친다.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주인장이 내놓은 음식 맛은 잊을 수 없다.
“이게 적성이 맞는 것 같아요. 사람들하고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즐거워요.” 술 취해 힘들게 하는 손님들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지만 좋은 이웃들을 만나는 일은 놓치기 싫은 즐거움이다. 사람들을 알아가고 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는 재미.  

무뚝뚝하고 술도 못 마시는 그녀는 술 취한 사람의 농담도 받을 줄 몰라 곤란한 적도 많다. 지금이야 슈퍼주인 13년 경력의 베테랑이라 불편한 손님들이 와도 금방 툭 털고 마는데 예전엔 너무 힘들면 극장가서 멍하니 신세타령도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서툴고, 고단한 시절을 지나 13년 동안 한자리에 앉아 장사를 하다 보니 기억에 남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손님은 행글라이더 타는 부부다. 나폴리공원이 없었을 때 소코봉 옆 봉우리에서 행글라이더 타고 빈 공터로 내려와 슈퍼에서 컵라면도 먹고 차도 마시고 갔다. 연애하던 시절부터 오더니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 셋과 함께 온다. 예전 행복한 모습 그대로다.

▲ 와온슈퍼는 동네 아낙들의 방앗간이다. 일이 없는 때면 이불에 발을 넣고 하염없는 수다가 이어진다.
또 있다. 슈퍼 시작하고 2~3년 되었을 때 누가 월남했다는 말이 있었는데 북에서 와온까지 널 타고 들어올 수 있다고 소문이 났다. 소문 때문인지 방파제 앞에 반공초소가 생겼다. 초소에서 보초를 서는 사람이 서너명 되었다. 젊은 사람들이 배가 고파 빵과 라면을 사먹곤 했다. 당시 친정 남동생이 군대에 있어서 밥도 많이 해줬다. 친정 동생 같아서. 그 총각들이 공을 잊지 않고 결혼해서도 찾아온다. 집에서 살림만 했다면 맺지 못했을 인연, 이웃들과 나누는 즐거움을 생각하면 고맙기 그지없는 곳이다. 1, 2월은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하루에 만원도 못 팔고 가게만 지키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장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동네 사람들이 자주 쓰는 설탕, 고무장갑 등 생활용품에는 이문을 적게 붙이는데도 가격비교는 안할 수 없나보다. 농협에서 설탕을 싸게 판다고 하면 차타고 끙끙거리며 짐을 이고 와서는 와온슈퍼에서 같은 물건의 가격을 물어본다. 가격 비교를 하는 것이다.

“염병하고~ 겁나게 싸다고 해서 사갔고 왔드마 여기가 더 싸네!” 농협에서 산 것이 싼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굳이 와서 확인한다. 요즘은 와온 일몰이 소문이 나서 이곳으로 민박하러 많이 온다. 주인장의 안주를 만들어 내는 솜씨도 일품이지만 아낌없이 있는 것을 대접하는 마음 때문인지 바다를 바라보며 막걸리 한잔 하고 가는 손님도 많다. 민박하러 온 사람들이 물건을 많이 사주면 고마운 마음에 게장도 퍼주고 김치도 퍼준다. 이심전심. 오는 정, 가는 정이 있는 동네 슈퍼. 앞으로 몇 년을 더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와온 바다를 보며 사는 것이 좋다는 이일선씨. 그녀의 행복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래본다.

임옥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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