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거제에 살고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옛 말처럼 나는 친구 덕에 일 년에 몇 차례 흔쾌하게 거제를 간다. 거제의 거친 바다를 보고 오면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 가 없다. 그런데 거제로 출발하기 전에 매번 고민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통영을 들렀다 갈 것인지 아닌지에 늘 고민을 하게 된다. 시간에 쫓겨서는 그냥 지나칠 때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을 때는 통영을 잠시라도 들렀다 간다. 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통영은 내게 이유 없이 참으로 즐거운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 통영만 다시 가게 될 기회가 있었다. 통영이란 말만 들어도 설레고 좋은데 가는 날에 마침 겨울을 실감하게 새하얀 눈송이까지 흩날렸다. 좋은 일에 좋은 게 겹쳐 오는 기분, 물론 좋지 않은 일에 좋지 못한 것이 겹치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통영에 도착해갈쯤은 언제 눈이 왔는지 싶게 하늘이 쾌청하게 맑아 있었다. 통영에도 눈이 내릴까? 하는 의문에 물어보니 눈이 거의오지 않는다 한다. 그런데 혼자 눈 오는 통영을 생각하며 그리 좋아했으니 금방 흥분하고 또 금새 실망하는 내 마음은 참으로 어쩔 수 없다.

통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뭘까? 이순신, 윤이상, 바다, 중앙시장, 동피랑... 개인별로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내게는 먼저 중앙시장과 해저터널이 떠오른다. 몇 년 전 혼자 통영을 갔을 때 중앙시장을 거닐며 내가 역시나 살아 있구나를 느끼는 감격적인 순간이 있었고, 해저터널을 건너며 그곳에서의 느껴지는 아뜩함, 섬뜩함... 뭐 그런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지금은 어디를 가나 그런 기억보다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그 무엇처럼 통영을 떠올린다.

통영은 또 변해 있었다. 변화란 이전의 것을 바꿔 버리는 게 아닌 이제껏 지닌 좁은 시야를 넓게 가져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랬을까? 통영은 여러모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2-3년 전에 생긴 ‘토영 이야~길’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통영을 토영으로 이야는 친한 언니정도라 하니 말 그대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는 길이 바로 ‘토영 이야~길’이다. 통영 말고도 우리나라 여기저기에는 걷기 좋은 길들이 참으로 많이 생겼다. 순천만 해도 남도 삼백리 길이라 해서 바다 길을 끼고 걷는 길이 있다. 통영은 웬만히 작아서 길을 걷기가 좋은 곳이다. ‘토영 이야~길’ 속에 들어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걸으면 이곳을 다시 한 번 오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청마 유치환과 꽃의 시인 김춘수, 그리고 시조시인 김상옥, 작곡가 윤이상과 소설가 박경리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순신장군의 삼도 수군 통제영이 바로 이곳이다. 이렇게 작은 도시에 당대에 내 놓으라 할 만한 문화예술인이 이렇게나 많이 나고 자랐고 또 이곳을 거쳐 간 인물들은 또 얼마나 되는지. 이렇게 생각하니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도 아까워 길을 가다 서고 가다 서고를 몇 번이나 했다. 요 근래 이중섭 그림을 보던 참에 그가 이곳에서 흰 소, 세병관 가는 길 등을 그렸다고 하니 다시 보고 할 수밖에... 백석시인도 사랑하는 여인 란을 찾아 이곳을 세 번이나 다녀갔다 하고... 아!

몇 달 전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를 보며 한밤중에 뜻하지 않게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며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주인공 작가의 삶이 무척이나 흥미로워 재미나게 봤는데 마치 통영을 거닐며 나도 그와 비슷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면 또 우연일까? 재미와 살짝씩 떨리는 흥분이 걷는 걸음마다에 함께 더해졌다. 세월에 어쩔 수 없이 변화된 모습을 인정하며 또 한편으로는 과거로의 생생한 이야기를 느껴보는 길 위의 추억이 머문 공간과 시간, 그곳이 바로 통영이 아닐까 했다.

문화를 이어가며 새롭게 발전시켜 간다는 것은 새로움을 새롭게 봐줄 수 있고, 과거를 기억해 그것을 지금의 삶으로 아름답게 자리하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눈부신 사랑도 있고, 가슴 사무친 아픔도 모두 현재의 이야기가 되어 거리마다 골목마다 일상적으로 배어있는 아름다운 도시 통영. 이번 여행은 무작정 좋은 통영이 확실히 좋은 통영으로 마음 새겨지는 그런 여행이었다.  

임옥경 시민기자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