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편지의 설원, 몽골

그날도 오늘처럼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를 향해 처음 뜨는 달이었다. 첫보름달! 희디흰 설원 드넓은 평원에 쌓인 눈, 저 멀리 한 떼의 말이 신세계를 건너가고 있었다. 여행객들은 도대체 할 말을 잃고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아니 곧바로 환성이 터져나왔다. 와~~~!!! 눈이다 눈이다 말이다 달이다 보름달이다~~!!!

 진실한 말은 ‘문장’이 아니다. ‘한’ 마디다. 긴 말은 사족이 대부분이다. 단말마처럼 깊은 내면으로부터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말이야말로 진실이며 진심이다. 참았던 한 마디가 그날 설원으로부터 터져 나왔는데, 사람들은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라 한다. 소원이 있었던가? 지금 이 순간, 그 언제부터인가 품어왔던 소원이 생각 날 수 있는가? 그 눈 덮인 광야에서, 그 말들의, 느릿한 걸음들을 멀리 두고 그 달빛 아닌 둥그런 동그라미의 완전성에 몰입하면서....소원이라니??

 소원은 열망이며 기대감이며 희망이다. 그건 절망 속에서, 권태 속에서, 일상의 무의미한 헛된 웃음들 속에서나 건져 올려야 할 안간힘인 것이다. 소원은 없다! 사랑도 없다! 미움도 절망도 헛된 웃음도 도무지 한통속으로 야릇한 허위일 것만 같다. 모든 것은 한 풍경 속에 깃들어 가만히 침묵하고 있을 뿐.

 

 그리하여 나는 몽골의 첫날을 첫기쁨과 첫황홀의 빛나는 신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은 죽는 날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슴돌에 새기지 않더라도, 내 가슴에 새겨져 그대와의 뜨거운 사랑 타령으로 거듭 되새김질 될 것이다. 몽골의 소들이 눈 속에 코를 박고 뜯어대던 가시 달린 풀들과의 입맞춤처럼 목숨 붙어있는 뜨거운 호흡으로 들숨 날숨 거듭 시를 쓰며 낡지 않는 영원을 노래할 것이다.

 

 모든 첫날은 위험하다. 아무 것도 몰라서 위험하다. 모든 첫경험은 위험하지 않다. 아무 것도 모르므로 위험하지 않다. 모른다는 건, 완전하다는 것, 모른다는 건 순결하므로 완전하고 순수하므로 완전하다. 나는 몰랐다. 몽골의 겨울, 영하 40도의 추위, 설원에서 풀을 뜯으며 일 년 열두 달 서서 사는 말들의 생애, 눈꽃들이 하나도 흩날리지 않고 녹지 않고 꼿꼿이 설원의 전체를 하얗게 순결하게 지키며 설명할 수 없는 완전성의 자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걸.

 나는 몰랐다 차탕족들이 사는 마을로 가려면 길을 잃어버려 꼼짝없이 산속 눈밭에서 얼어죽을 수도 있었다는 걸. 나는 몰랐다 모든 첫경험들이 그렇게 알 수 없는 신비의 생을 살게도 한다는 것을....우연히 함께 가게 된 몽공의 열흘은 나에겐 억겁 인연으로부터 온, 첫시간이었다. 말한다 모두가...“영하 40도? 난 못 가 아니 안 가!” 영하 40도인 땅에서도 사람은 뜨겁게 숨을 내뿜으며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안 가보고 어찌 알랴? 바보는 용감하다. 난 바보다!       

 

 

  내 생애 어느 첫겨울    

  첫하늘 아래 설원은    

  흰 다이아몬드로 빛나고    

  첫태양이 첫눈을 비춘다    

  모든 건 끝없는 '첫'이다 첫만남이다    

 

  첫새벽첫놀라움첫발자국첫처녀첫꽃첫행위첫날개    

 

  첫잉태첫출산첫피흘림첫기도

 

  첫눈물첫생일첫촛불첫열락    

 

  첫보름달첫말발굽소리첫양털모자첫수태차첫말똥첫게르의첫전나무첫잉걸불    

 

  첫눈사람과 도란도란 읽는    

  첫역사 인간과 지구가 함께 흩날리는 첫시간의 첫순간의 첫사랑의 첫기도    

 

  이 몽골의 아름다운 첫비밀    

  벗길 수 없는 광야의 광활 속에 서 있게 하소서

   

  뜨거워지더라도    

  순수, 첫순수를 위해 맨몸을 살게 하소서

   

  아무 것도 더는 원하지 않게    

  '첫' 잃지 않는 소나 말이나 양떼처럼    

  그냥 첫여물 씹는 짐승이게 하소서

     

  우물우물 첫우물 첫타래박처럼    

  첫地水火風 끌어안고 뒹굴게 하소서    

 

  독수리처럼 첫하늘로 펼치며    

  첫삶 첫죽음 하나이게 하소서!

 

     -<첫편지-몽골시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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