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문 시인의 등단작 <무심으로 읽는 아버지>에 부쳐

아버지는 항만부두 노동자였다

새벽이면 아버지는

매일 부두로 나가 닻을 올렸다

굵고 힘센 큰 손으로

배를 밀고 떠나보내고 맞이하는 일

한평생 당신의 업이었다

 

배운 것 없어 몸뚱아리가 전부였던 아버지

다섯 아들 굶기지 않으려고

닻으로 비틀거리는 몸뚱아리 붙들며

눈 뜨면 부두에 나가

당신의 몸무게보다 더 큰 짐들을 지고 날랐다

 

아버지의 닻은 다섯 아들이었다

 

닻을 내리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 옷 속에서는 바다가 흘러나왔다

다섯 아들은 그 바다 속으로

은빛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곤한 잠에 든 아버지를 읽었다

 

집에 돌아오면 한마디 말없이 잠들었다가

다음 날 새벽이면

부두로 나가던 아버지

 

아버지에게서는 늘 누룩꽃 내음이 났다

선창가 해질 무렵, 선술집에 앉아

말로 풀어내지 못한 세상살이 짐들 내려 놓으며

갈매기처럼 울던 아버지는

다시는 바다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

 

- 최성문 <무심으로 읽는 아버지>

 

“아버지는 항만부두 노동자였다”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시가 있다. 평생 바다를 삶의 현장이자 배경으로 살아오셨던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추억과 그리움을 노래한 이 시는 2019년 <작가>지에 신인으로 등단한 최성문 시인의 데뷔작이다. 시 작품은 바로 시인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은빛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 곤한 잠에 든 아버지”, “말로 풀어내지 못한 세상살이 짐들 내려 놓으며 / 갈매기처럼 울던 아버지”야말로 시인이 어린 시절 성장의 과정에서 보아왔던, 어쩌면 삶의 전범으로 보고 배웠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있는 그대로의 반영일 터이다. 그래서 이 시 속의 아버지는 시인의 삶과 성장의 내력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로 작동하고 있다. 아들들의 삶은 아버지의 삶으로부터 근원한다고들 한다. 사실 그는 이 작품에서의 아버지의 삶에 대한 묘사들과 같이 ‘굵고 힘센 큰 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두터운 손만큼의 열정으로 여순항쟁의 연구자이자 실천적 활동가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한편 이 시는 서정주의 <자화상>이란 시를 떠올리게도 한다. “애비는 종이었다”라는 구절과 이 시의 첫 구절은 닮아 있다. 하지만 서정주와 최성문 시인의 작품은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서정주의 <자화상>은 그의 성장과정의 우울과 어두운 그림자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러한 내면의 주인공은 서정주 자신이기보다는 그의 시적 가상에 어울리는 페르소나(가면)였을 뿐이다. 하지만 최성문의 시에서의 화자는 결코 가면을 쓰고 있지 않다. “배운 것 없어 몸뚱아리가 전부였던 아버지”였으며 “아버지에게서는 늘 누룩꽃 내음이 났다”고 노래한 시인은 아버지에 대한 상찬보다는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를 솔직하게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는 사실 솔직 담박한 사람이다. 작품의 제목 <무심으로 읽는 아버지>에서도 추론할 수 있듯이 무심(無心)한 태도로 사물이나 타자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무던하게 애를 쓰는 그의 모습을 옆에서 자주 보곤 했다. 그가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혹은 기존의 가치와 윤리로 세상이나 사람들을 보거나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냥 존재 그 자체로의 ‘날 것’, 어쩌면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강조한 ‘물자체’ 그대로 사물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최성문 시인이다. 그러한 인간 최성문의 덕목과 자질이 시인으로 성장하게 한 동력이었음이다. 그런 투명한 시선의 시인, 세상에 대한 편견이나 관념이 아닌 몸으로 살아가고 노래하는 시인, 그런 최성문 시인의 더 크고 아름다운 미래가 기대된다.

 

▲ 지난 1월 11일 광주전남작가회의 신인상 축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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