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끈을 붙잡고 온 세계를 담아내고자 했던

▲ 베토벤(1770-1827)
93년 가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5년 반 만에 학교에 복학했다.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고 또 많은 것들이 그대로 있었다. 나는 무심하고 고고한 채 따갑게 쏟아지는 햇볕을 받으며 거리에 있었다. 세상은 내게 단 한줌의 숨 쉴 공기도, 단 한평의 쉴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다고 여겨졌던 시간들. 그것을 견디게 해주었던 것은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였다. 무작정 걸으며 듣고 또 듣고 급기야 테이프가 늘어져 다시 똑같은 것을 사다가 채우기를 몇 번. 열정 소나타는 무작정 억울하고 가슴 먹먹했던 젊은 날의 한 시절을 버티게 해준 유일한 위로와 안식처였다.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열정(Appassionata. 제23번 f단조)은 그의 중기작품으로 1805년 작곡되었으며 3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다.

프랑스의 작가 로맹롤랑은 “열정의 마음, 탄탄한 턱과 위쪽을 노려보는 날카로운 눈빛, 고뇌와 단련된 불굴의 기백이 그대로 다가오는 것처럼 여겨지는 작품”이라고 말했던가. 이 작품을 표현하는 글들은 무수히 많지만 직접 들어보지 않고서는 그 감동을 느낄 수 없으리라. 특히 3악장의 Presto는 이 곡의 압권이어서 멈추었던 심장도 뛰게 만들며 전율이 손끝에서부터 온 몸의 감각기관으로 퍼져나가 불타오르게 만든다. 냉각된 열정이 용암이 되어 흐르는 순간 세상과 조우하며 화해할 수 있게 해준다.

시민계급이 성장해가던 혁명의 시기, 자유가 지상명령처럼 지식인들을 움직이던 시대, 그의 음악적 정열과 힘은 무엇이었을까? 궁정과 교회의 후원이 사라진 때에 악보 출판과 작곡료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그는 자신의 내적 감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데만 관심을 가진 최초의 직업적인 음악가라 할 수 있다. 일찍부터 모차르트처럼 음악신동이 되어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고, 일생은 병든 귀에 대한 투쟁으로 점철되었으며. 중요작품들 중 일부는 그가 완전히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마지막 10년간 작곡된 것이었다. ‘가슴속에 있는 창작의 요구를 다 채우지 못하고서는 세상을 떠날 수 없었던’ 베토벤. ‘운명의 끈을 붙잡고 온 세계를 담아내고자’ 했던 사람...

문득 화가 고흐가 떠오른다. 평생 단 한 작품밖에 팔지 못했고, 가난한 사람들이 단돈 몇 센트에 사서 걸어놓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화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진실을 그리고 싶었던’ 고흐. 베토벤도 그렇지 않았을까?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일찍 짊어진 삶의 무게를 통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갖게 되진 않았을까? 그리하여 그가 가진 강한 무기, 음악이 있어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200여년의 세월을 넘어 나에게 와 어둡고 격렬한 감동을 주나보다.

이재심
지오바이올린학원 원장
이재심원장은 철학과 음악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바이올린과 오카리나를 연주하고 가르친다. 음악을 향유하고 사유하는 이 행위가 무디어진 일상에 잔잔한 즐거움이자 위로가 되기를 꿈꾸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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