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조합원

 

오래 전에 어느 신부님의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방에는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로 시작하는 10가지 계명을 적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 어느 고명한 가톨릭 성인의 가르침이려니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중국 원명대 선승의 보왕삼매론이라 한다. 가톨릭 성직자가 불교 승려의 말을 귀하게 여기는 것도 신선했지만, 나무랄 것 없어 보이는 일에 시비를 걸고 나선 것이 특이해서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말은 몸이 아프다고 하면서도 80대 중반까지 꿋꿋이 농사일을 하고 있는 대다수 농부들의 사례와 더불어 몸 아픈 것에 대해 제법 대범하게 생각하게 하는 힘이 돼 주었다.


이 선승은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쉬워 이를 경계한 것이라 하는데 선뜻 공감하기는 어렵다. 건강을 자신하던 시절에 나는 몸을 쓰는 데 절제가 없었다. 동작이 너무 격하거나 거칠어서 내 몸이 다치거나 대상이 다치기 일쑤였다. 지금은 손발이 거칠어져서 희미하지만 전에 세어보니 손발과 팔다리에 베이거나 다쳐서 생긴 흉터가 좋이 40개는 됐었던 것 같다. 병이 생긴 후에야 그런 버릇이 거의 사라지고 몸을 움직이는 데 조심하게 되니 이것도 병의 미덕이라 해야 할까. 그리고 사람의 탐욕이라는 게 병이 생겼다고 해서 쉽게 꺾이는 것인지 또한 의문이다.


병이 생긴 후 내게 일어난 또 다른 변화는 담배를 끊게 되었다는 것이다. 흡연 습관은 명색이 생태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자 하는 내게 늘 부끄러움이었다. 건강에 대한 영향과 만만찮은 지출은 물론 수많은 공해 물질을 포함한 연기, 남에게 역겨운 냄새,  꽁초 등. 금연은 전에도 몇 번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완벽한 작심삼일이었다. 그것은 내게 불가능한 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흡연하는 환자는 치료할 필요도, 가치도 없다는 ‘귀인’의 말을 들은 직후부터 지금껏 담배를 끊고 있다. 내가 대견하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농사일을 하면서 일의 단락이 지어지면 담배 한 대 피며 쉬는 즐거움에 대한 소박한 기대가 사라지자 중간에 쉬기가 애매해져버렸다. 또 술은 극소량을 허락받았는데 별로 줄이지 못하고 있다. 일에 몸이 부친 것도 있겠지만 금연에 대한 짜잔한 보상심리도 작용하는 것 같다.


보왕삼매론의 전체 요지는 진리를 탐구함에 편한 길을 쫒다보면 막히기 쉬우니 오히려 어려움을 기꺼이 대면함으로써 참됨에 이를 수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편안한 삶은 삶의 무덤이요, 스스로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역경은 진실을 캐낼 수 있는 노천광이라는 평소의 생각과 일치한다. 그런데 내가 막상 아프고 나니 기꺼이 대면하기는커녕 꽤 불안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데. 


눈에 띄지 않게 나빠지는 듯한 몸상태를 보면 마냥 겁박도 아닌 것 같다. 당장 벌여놓은 농사일도 걱정이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노후도 걱정이다. 무리하지 않는다는 좋은 구실로 일에 대한 의욕도 줄어버렸다. 삶의 어려움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 부끄럽다.


이럴 때 어머니를 생각한다. 중학교 때일 것이다. 나와 어머니가 똑같이 몸살감기를 앓았는데, 들에 나가지 않고 방안에 누워만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딱 한 마디 하셨다. ‘내가 천한 몸이어서 이렇게 일하는 게 아니다.’

▲ 김계수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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