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백일장 중학생 산문 최우수] 순천연향중학교 3학년 정은빈

 

물고기 - 순천연향중학교 3학년 정은빈

“탁, 탁!”

 

골목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하지 못하는 청각장애인 청년이 군인들이 휘두르는 곤봉에 맞고 있었다. 입만 뻐끔거리며 맞고만 있던 청년이 머리를 감싼 채 마구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뭍에 내던져진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는 것 마냥 섬뜩하게 느껴져서 냅다 집으로 달렸다. 집에서 막내 동생과 놀아줄 때도 자꾸만 머릿속에서 아른거려 다시 골목으로 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청년은 사라지고 핏자국밖에 없었다. 내가 그때 뛰어 들어 그 군인들을 막았더라면 그 청년은 살 수 있었을까? 아니. 나까지 맞았을 것이다. 눈물이 나왔다. 청년이 피를 흘려서가 아니라,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처지가 가여웠다. 억울함이 눈물에 밀려 나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나를 향해 엄마가 어딜 다녀왔느냐며 내질렀다. 아마,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라디오 속 아나운서의 말에 엄마의 신경이 날카로워졌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밤마다 형을 불러 밖으로 나돌지 말라며 애원하셨다. 옆집 상구네 형이 시위하다 잡혀갔다는 소식에 행여 내 자식도 잡혀갈까 염려하신 거겠지. 나 역시도 형이 군인에게 붙들려 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자기 전, 형에게 굳이 나가서 시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꼭 형이 나서야만 하냐고 나지막이 물을 때마다 형은


“아직 학생일 뿐인 내가 사람들 틈에서 나선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그래도 목소리 하나 더 얹어보는 거야. 그럼 언젠간, 언젠가는 변하겠지. 변할 거야.”


라고 답했다. 어둠 속에서 형의는 눈에 들어찬, 결의를 볼 수 있었다. 나는 형을 이해할 순로서 없었지만, 그래도 응원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아버지는 창문을 이불로 꼭꼭 막았다. 이러면 자고 있을 때 창문으로 총알이 날아와도 이불 안 솜 때문에 안전할 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런가 보다’하고 옆에서 아버지를 거들었다.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모두 끊긴 이 도시에 영영 고립되어 버릴 것만 날이 밝는 대로 민철이에게 갔다. 학교에 안 가는 것은 좋았지만 마냥 집에만 있기에는 좀이 쑤셨다. 오늘은 민철이와 광장에 잠시나마 가볼 계획이었다. 엄마는 절대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잠깐은, 잠깐은 괜찮을 것 같았다.

 

한바탕 시위가 끝난 뒤의 광장은 폐허가 되었다. 주인을 잃은 신발들은 거리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야,,, 우리 그냥 가자.”
민철이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 나왔다. 순식간에 시민들과 군인들이 대립했다.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걷던 나와 민철이는 흘러나오는 애국가에 걸음을 멈추고 애국가를 불렀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대학생들도, 혀만 끌끌 차던 할아버지들도, 가게 셔터를 내리전 상인들도 일제히 멈추고 애국가를 불렀다.

 

탕! 
탕! 
탕탕탕!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갈겨댔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다. 어디로 향하는지, 나랑 같이 있던 민철이가 지금 내 옆에 있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낡은 구멍가게 창고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발소리가 들리면 숨을 죽였다. 그렇게 까무룩 잠들었다 깨어났을 땐 이미 해가 진 후였다. 언제 다쳤는지 기억도 안 나는 상처들을 달고 집으로 갔다. 나를 본 엄마는 “아이고, 이 정신 빠진 놈아” 하며 등짝을 사정없이 때렸다. 아버지는 무사했음 됐다며 어서 밥이나 들라고 했다. 그런데 형이 안 보였다. 

 

“형은요?”
“아이고, 민혁이 고놈이 벌건 대낮에 심부름 시켰더니만 해 떨어져도 안 기어들어오네.”

 

심부름하러 나간 형이 아직 안 들어 온 모양이다. 곧 들어오겠거니 했지만 형은 날이 밝아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신발도 거꾸로 신은 채 형을 찾아 나섰다. 나도 기어이 따라 나섰다.

 

혹시나... 하며 대학병원으로 갔다. 대학병원에는 다친 사람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형이 그곳에 없길 바랐다. 복도 구석진 곳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시각장애인 청년이었다. 청년은 눈도 못 감은 채로 떠났다. 차마 감겨줄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병원을 아무리 돌아도 형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걸까. 죽은 건 아니겠지. 집으로 돌아갔을 땐 다시 형이 있겠지. 몇 주가 지나도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원래 없었던 사람 마냥. 무엇이 형을 앗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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