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국민들’을 읽고

청문회 나온 높은 양반들과 달리 나는 세금도 잘 내고 국방의 의무도 지켰다.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도 안 한 국민이다. 그런 내가 ‘불량 국민’이라고? 책 제목에서 뭔가 불량한 냄새(?)가 난다.
1945년 해방 이후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건이 있다. 바로 ‘10․19 여순사건’이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차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하지 못한 사건이다.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한 저자는 잘못 알려진 사실을 낱낱이 파헤쳤다.

 
저자는 여수출신 주철희(사진)이다. ‘북랩’에서 출판한 이 책은 지금 인터넷과 서점에서 줄기차게 팔리고 있다. 책 제목을 보면 그 흔한 현대사 이야기가 아님을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다. 권력을 장악한 승자의 논리에서 쓴 것이 아니다. 더구나 총칼보다 무서운 살아있는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은 책이어서 인기가 있다.

“국군의 역사에는 부끄러운 모습이 남아있다. 민족반역자에 의해 국군의 정통성과 정체성은 왜곡되었으며, 자국의 국민에게 총을 겨누어 학살했다.” 저자는 서문에 어느 때보다 전쟁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군대를 향해 쓴 소리를 하였다. 지역의 왕성한 시민활동가로서 어떠한 불의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자세가 책 곳곳에 지뢰밭을 거니는 것 같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게 한다.

역사학자로서 역사적 사실을 정리하는데 멈춘 것이 아니다. 시민운동을 하듯 역사적 사실에 생명을 불어넣어서 살아 온기를 느끼게 하였다.

 
순천과 구례, 광양, 보성 등 여순사건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발로 뛰어, 감춰둔 이야기를 이제 막 꺼낸 것이다. 베를 짜는 아낙이 가느다란 날줄과 씨줄을 교차해서 섬섬옥수를 만들어내듯 하나하나를 증명하였다. 국립도서관과 기록실을 뒤져서 사진 속 인물, 미군 계급장, 14연대 연대장 근무 기록을 짜 맞췄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책이   ‘불량 국민들’이다.

반대파를 무조건 ‘빨갱이’, 지금은 한 술 더 떠 ‘종북 좌파’로 마녀사냥하는 근거가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그 법이 여순사건 때문에 만들어졌다면 누가 불량 국민을 만들었는지 해답을 찾을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면 억울한 희생은 물론이고, 후손에게도 멍에를 씌운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여순사건에서 19가지의 왜곡된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국가 폭력’이라는 무서운 그림자가 느껴진다. 피해지역 시민들이 먼저 읽어야 원통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다.

한창진
여수넷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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