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는 농촌지역이 도시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넓다. 도시문제와 함께 농촌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외서면에서 17년 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계수 조합원이 농촌의 일상을 전하는 칼럼을 싣는다. <편집자 주>

  오늘날 농촌에서 마을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농업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로 인해 공동체를 이룰 구성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더구나 우리 마을은 셋으로 나뉘어 있어 이웃 두 마을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 있는 회관을 일상적으로 이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동네는 모두 8가구가 있는데 거주 인구는 13명뿐이다. 그나마 8명은 일할 능력을 거의 잃은 80세 이후의 노인들이고 실제 생산 활동을 하는 것은 세 가구에 불과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공동체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우리 동네 사례는 조금 예외적이라 하겠으나, 규모가 웬만한 다른 마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 마을회관은 사실상 노인들의 쉼터로 변한 지 오래다.
  공동체가 성립하고 존속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의존성’이 다. 즉 ‘내가 없으면 너도 없고, 나 또한 너로 인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삶의 원칙으로서 내부에 튼튼하게 뿌리박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농업의 기계화는 농부들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빠르게 해체하고 있다. 갈수록 진화되는 기계화는 농사일을 매우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이는 소수 대농에게로 농토와 농사가 집중되며 기계의 소유와 사용이 불가능한 소농·고령농의 퇴출로 이어졌다. 또한 과거에 일반적이었던 협업은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또는 대농들이 갖는 기계 사이의 협업으로 바뀌었다. 기계화가 어려운 품목의 농작업은 외부의 농업노동자를 쓰다가 최근에는 외국의 이주 노동자들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적인 소농들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던 마을공동체의 해체는 불가피하다.
  자동차 소유가 보편화되고 매체와 통신 수단이 발달한 것 또한 마을공동체의 해체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농사 정보의 수집, 여가 시간의 활용, 친구나 이웃과의 교류 문제와 관련된다. 농사와 관련된 정보는 외부에서 귀찮을 만큼 자주 열리는 품목별 교육에 참여하거나 통신 기기를 이용하고, 관심 품목의 시장 상황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맘만 먹으면 멀리 있는 친구들을 시내에서 만나 여가를 즐길 수도 있어 이러한 문제들로도 이웃에게 아쉬울 일이 전혀 없게 되었다. 그 결과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 간에 사소한 문제로도 불화가 쉽게 발생하지만 쉽게 해소되지는 못한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1950년대 말이나 1960년대 전반에 나고 자란 사람들은 시대적 행운을 타고난 세대라 생각한다. 이들은 우선 전쟁을 겪지 않았고(물론 80년 5월의 비극도 있었지만), 한국전쟁 후의 혼란과 어려움이 웬만큼 수습된 시기에 자랄 수 있었다. 또 공교육이 보편화되면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청년기가 급속한 경제 성장기와 맞물리면서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었다. 이에 더하여 여러 부문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회와 역사를 변혁하는 주체로서의 경험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눈에 쉬이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행운이 있었다. 바로 쇠락해가는 전통시대의 끝자락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농업이 국가 경제의 중심이었던 시절에 불완전하게나마 해방 직후의 토지개혁으로 형성된 소농이 주축이 된 마을공동체가 건강하게 살아 있었다. 자급자족은 경제생활의 기본 목표로서 소박한 삶은 자연의 훼손이나 오염에 대한 걱정을 낳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시 물질생활에서의 불편이나 부족함이 돌이키기 싫은 기억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 그 시절에 관한 기억은 내 모든 기억과 인식의 원형질 같은 것으로서 언제든 되살아난다.
  내가 좋아하는 대중가요 중에 최백호라는 사람이 부른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가 있다. 초로에 접어든 한 남자가 인생의 뒤안길에서 젊은 날을 관조하듯 회상하며 약간 감상적으로 부른 노래다. 가사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내가 어린 시절의 마을공동체에 관한 기억에 붙들려 있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 공동체는 다시 올 수는 없는 것인가. 그런 생각은 현실화될 수 없는 낭만이어서 죽은 애기 불알 만지듯 허망한 일이라 타이르는 듯하다.

김계수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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