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려두기 : 필자는 여순사건이란 명칭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재판을 대체로 ‘여순사건 재심개시 결정’이라고 하였기에 독자의 혼동을 줄이고자 여순사건이란 명칭을 차용했다.
     

  2019년 3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을 당한 장환봉 씨 등 3인의 유족(장경자, 신희중, 이기화)이 제기한 재심신청에 대해 최종적으로 재심개시를 결정하였다. 
  대법원 결정은 여순사건의 진실 규명에 매우 중요한 사항으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환영만하고 있을 사항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즉 대법원에서 재심개시 결정까지는 숱한 곡절이 있었다. 곡절의 주인공은 검찰과 대법원이었다.
  여순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8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직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검찰이 어떤 명목 또는 법조항의 위배를 제기하며 법원의 재심개시를 8년간이나 무마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대법원은 무슨 연유로 4년 동안 방치하고 있다가 이제야 재심개시를 결정했는지 말이다.

▲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장경자 유족님

  유족 3인(장경자, 신희중, 이기화)은 2011년 10월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을 신청한다(2011재노30). 재심 신청이유는 1948년 11월에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을 받은 고인들은 불법적으로 체포되어 감금한 뒤 군법회의에서 처형되었음으로 위법이라는 것이다.
  당시 법률을 정확하게 명시하면, 장환봉 등 3인은 당시 호남계엄지구사령부 호남계엄지구고등군법회의 명령 제3호(선고일 1948년 11월 14일) 선고에서 형법 제77조, 포고령 제2호 위반으로 처형되었다. 
  1심 재판부는 2014년 12월 유족 3인의 재심 신청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여 재심개시를 결정하였다. 이에 광주고등검찰청은 항고를 했다. 검찰의 항고 사유는 “유족의 주장이 정황만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불법적 연행 구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2심 재판부도 2015년 7월 1심 재판부의 재심개시 결정이 옳다고 판단하여 다시 유족 3인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또 다시 검찰은 대법원에 재항고를 하였다. 재항고 사유는 1심과 같았다. 
  검찰은 끊임없이 여순사건 진실규명을 막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15년 7월 대법원으로 넘어간 재심개시 결정은 무려 4년 동안 방치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재심신청으로부터 8년이라는 시간 속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검찰이 있었다.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된 또는 불법적 행위를 규명하려는 과거사 정리를 부정한 정부와 그 권력의 눈치를 보았던 검찰이 있었던 것이다. 즉 검찰은 과거사 정리를 부정한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지속해서 항고하면서 재심개시를 막았던 것이다. 
  대법원 또한 박근혜 정부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시녀 노릇하느라 4년 동안이나 방치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이번 대법원 재심개시 결정에서 13명의 대법관 중 9명은 개시결정 찬성이었고 4명은 반대였다. 반대한 4명(조희대, 박상옥, 이기택, 이동원)의 대법관은 공교롭게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밀접한 인물들이라고 한다. 
  2015년 대법원에 재항고된 2011재노30 사건은 마침내 8년여 만에 대법원에서 재심개시 결정하였다. 재심개시 결정까지 8년이라는 지나난 시간동안 유족 3인 중 두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유일하게 한 분이 대법원 재심개시 결정이라는 기쁨을 맛보았다.
  기뻐할 수만은 없다. 조만간 광주지방법원 순천지법에서 재심이 개시될 것이다. 이 시점에 대한민국 검찰은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궁금하다. 여전히 낡은 이데올로기와 권력의 눈치 보기에 급급할지 아니면 국민의 검찰로 시민의 검찰로 재탄생할지 그 기로에 서 있다.
  사법부도 박근혜 정부시절 사법부 농단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재판부가 법과 양심에 따르지 않고 권력을 쫓았던 수치스러운 지난 과거를 떨쳐낼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역사는 정의롭게 바로서야 한다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법부가 직시했으면 한다. 
  이번 대법원 재심개시 결정에 대해서 지역사회 또한 반성이 필요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번 대법원 재심개시 결정은 유족 3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특정 단체나 지방자치단체, 유족회, 정치권, 언론 등의 도움, 협조, 지원도 없이 오로지 유족 3인의 힘든 투쟁의 결과물이다. 
  관심도 갖지 않고 외면했던 이러한 단체들이 일제히 환영한다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반성과 성찰 속에서 재심 재판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제라도 유족 3인의 개인적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 재심개시 결정은 지역사회에 여순사건을 어떻게 인식할 것이냐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이제라도 지역사회가 똘똘 뭉쳐 소송 당사자인 3인이 재판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판의 승리는 여순사건 민간인 학살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이며, 여순사건 진상규명에 진일보한 역사가 될 것이다. 이마저도 외면하는 지역사회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고마운 인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유족 3인 장경자님, 고 신희중님, 고 이기화님 당신들의 굳은 결심과 의지가 여순사건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님들의 확고부동한 진실 찾기는 여순사건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놓았습니다. 고단하고 힘든 길에 함께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신희중 님과 이기화 님 큰일 하셨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힘든 시간 잘 버텨 주신 장경자님 고맙습니다.”                        

                 주철희 역사학자

▲ 호남계엄지구고등군법회의 명령 제3호 장환봉 명부(빨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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