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시대와 역사에 대한 역설과 비극을 함의하고 있는 공간이다. 지배권력에 대해서는 저항과 비타협의 자세를, 핍박받는 민중에 대해서는 포용과 모성의 태도를 보여주었던 공간이 바로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겉으로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선을 가지고 있지만 안으로는 고결한 열정만큼의 둔중한 무게를 갖고 있다. 하여 지리산은 소통과 상생의 산이면서 비판과 저항의 거점이었다. 골짜기 계곡마다 지배권력으로부터 소외되거나 쫓겨온 수많은 민초들의 삶의 근거지이자 저항의 교두보가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지리산은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의 반제 반봉건의 거점이자 역사 투쟁의 공간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병주의 대하장편소설 「지리산」의 배경으로 설정된 지리산은 새로운 민족국가의 근원인 재구성된 국토로서의 상징성을 갖는다. 박태영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지리산은 여백으로서의 국토이자 새로운 근대국가 건설의 출발점이었다. 이병주의 이 작품은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6․25 전쟁이 끝나는 기간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제에 대한 식민지 투쟁과 해방 전후기의 좌․우익 대립, 냉전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 되었던 6․25전쟁까지의 기간은 한반도에 있어서 단일 민족국가 형성의 유일한 기회였다. 하지만 외세의 타율적인 힘의 논리와 냉전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한반도에서의 단일민족국가 건립은 실패하였다. 
  작품에서 제시된 공간으로서의 지리산은 화원의 사상의 공간이면서 민족국가의 기원으로서의 국토라는 개념을 포획해내고 있다. 또한 주인공 박태영을 비롯한 서사주체들은 진정한 근대 민족국가의 국민되기를 위해 고통스러운 현실투쟁을 감행하지만 허망한 정열로 귀결되고 만다. 결국 그것은 여전히 한반도에 진정한 의미의 탈식민과 탈이념이 관철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대하장편소설「지리산」은 역사투쟁에 나선 이들의 기투와 열정에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간 근대국가 건설의 양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병주는 민중들이 지향하는 정치학과 그들에게 친숙한 대중미학화의 방식을 결합시킴으로서 그만의 정치 서사를 구축해냈으며,「지리산」이라는 대하역사소설을 통하여 근대국가 형성과정에 대한 민중들의 열정과 좌절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제시해내고 있다.

최현주
순천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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