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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과 여순10·19의 동행을 꿈꾸다2019년, 제주4·3 순례를 앞두고
최성문  |  sungmun11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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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호] 승인 2019.04.03  14: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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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과 첫 만남 ; 제주4·3의 두 가지 모습 
  작년 5월, 제주4·3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제주에 갔었다. 제주4·3 70주년 기념행사가 집중되었던4월이 지나서인지 공항에서는 제주4·3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관광안내소에도 순례길을 소개하는 소책자도 보이지 않았다. 

   

▲ 내비게이션(제주시 애월읍 어음리 707)을 찍고 도착한 곳에서 빌레못굴은 찾을 수 없었고, 돼지 막사만 보였다. (2018.05.07.)

   
▲ 허허벌판에서 1시간 정도 헤매다 찾은 은폐된 빌레못굴은 바로 옆 길에서도 찾기가 힘들었다.(2018.05.07.)

  제일 먼저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학살터 빌레못굴’ 찾아갔다. 분명 내비에는 ‘빌레못굴’이라고 찍혀있는 곳에 내렸으나 허허벌판에 돼지 막사만 보이고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1시간 정도 뒤지고 다녔으나 굴 비슷한 흔적도 찾을 수도 없었다. 반면에 ‘제주4·3평화공원’ 그리고 ‘너븐숭이 4·3공원’을 쉽게 찾을 뿐만 아니라 관광지화 되어 있었다. 
  ‘제주4·3 70주년’, 대통령이 직접 찾아와 추념식에 참석하였고, 전국적으로 추모객들이 몰려온다는 TV뉴스를 보면서 ‘제주4·3’이 완성된 줄 알았다. 제주4·3 곳곳이 성지화되어 있고, 추모의 공간으로 보였다. 그러나 2박 3일 제주4·3 유적지를 직접 걸으면서,

‘보여지는 죽음은 
환한 5월의 햇살을 받고 있지만, 
보여지지 않는 죽음은 
여전히 컴컴한 굴 속에서, 산 속에서, 아스팔트 밑에서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제주도를 떠나면서 그래도 제주4·3이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제주4·3을 진압하라는 국가권력의 부당한 명령에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며 들고 일어났던 여순10·19는 여전히 ‘반란’으로 낙인찍혀 있기 때문이다. 

   
▲ 제주4·3의 상징인 조천읍 북촌리 대학살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너븐숭이 4·3기념관, 제주4·3를 전국적으로 알린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이기도 하다.(2018.05.09.)

여순10·19는 70주년에도 여전히 싸늘
  제주에서 돌아온 후 단 하루도 제대로 쉴 틈이 없었다. ‘제주4·3 70주년’ 성대한 추념식 소식에 이 지역 시민 사회도 들뜨기 시작했다. 제주4·3처럼 다 잘 될 줄 알았다. 지역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그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여순10·19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여순10·19 70주년이 되는 10월 19일부터 11월 18일까지 20만 국민청원을 목표로 청와대 청원 운동을 전개했으나 한 달 동안 6,645명의 국민들이 청원에 참여했다. 
  70년이 지났다. 제주4·3은 봄햇살 유채꽃처럼 화사했지만 그러나 여순10·19는 여전히 가을서리처럼 싸늘하기만 했다. 


제주4·3과 두 번 째 만남 ; 여순10·19무관심에 섭섭함을...
  작년 제주4·3, 여순10·19 70주년이 끝나가는 12월에 다시 제주를 찾았다. 제주4·3도민연대가 개최한 ‘제주4·3과 여순항쟁 70주년 기념토론회’에 주철희 박사와 함께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날 발제자인 주철희 박사는 “항쟁은 지배 권력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것이며, 제주4·3과 여순사건은 항쟁으로 불려져야 한다.”며 정명화 작업의 정당성을 제주 지역사회에 피력했다. 토론에 참여한 200여 명에 가까운 제주4·3 유족들 앞에서 필자는 “지금의 제주4·3이 제주도민들의 힘으로만 되었겠느냐? 여순10·19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제주도민들의 무관심에 섭섭하다.”며 여순10·19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렸다.
  토론을 마치고 함께 자리를 한 여성 유가족들께서 "몰랐다, 미안하다."며 눈가를 적신 목소리로 위로해 주던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 1950년 예비검속자 132명을 집단학살했던 '백조일손지묘'. 서귀포시 대정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시 유족들은 시신들을 제대로 찾지 못해 '백 할아버지에 한 자손'이라는 마음으로 해마다 7월 칠석날 합동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2018.05.07.)

2019년 4월 제주4·3 순례길, 
제주4·3과 여순10·19의 아름다운 동행을 꿈꾸다

  제주4·3 71주년 추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남동부지역 유족·시·시의회·학계·시민단체 등과 함께 제주4·3 순례길에 나선다. 제주4·3을 추념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많은 추모객들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추모객 한 명이라도 붙잡고 여순10·19에 이야기 하고, 설득하고, 알리고, 뭐라도 해 보리라. 결국 제주4·3과 여순10·19는 71년 전에도, 지금도 함께 동행해야 할, 피로 맺어진 형제이다.

최성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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