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현 조합원

자가용이 생긴 이후 시내버스 탈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1~2년 전부터 가끔 시내버스를 탄다. 술 약속이 있을 때 집에 차를 놔두고 버스를 타고 오간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대신 대리운전보다 돈이 덜 들고 여유롭다. 처음에 버스를 기다리면서 살짝 놀랐다. 내가 탈 버스가 어디 쯤 오고, 얼마 후 도착하는지 실시간으로 알려 주는 전광판은 신세계였다. 내가 지금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실감이 팍팍 들었다. 버스가 언제 지나갔는지, 언제 올 것인지 모른 채 그냥 막막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더 놀라운 사실을 겨울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다가 의자에 앉았을 때 발견했다. 1~2초 후 엉덩이에 따뜻함이 전해진 것이다. 이게 뭐지? 헐, 대박! 이런 생각과 느낌이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감동했고, 시민에 대한 배려라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찰나였지만, 민주주의 세상이 도래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나는 요즘도 열선이 깔린 의자에 앉아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속으로 감탄한다. 세상 참 좋아졌다! 

추석이나 설이 되면 나무로 불을 때어 물을 데운 후, 찬물을 섞어 미지근한 물로 어머니가 내 몸에 묵은 때를 벗겨 주었다. 어두컴컴한 헛간에서, 큰 다라이에 앉아 있는 내가 초라하기도 했지만 추워서 오들오들 떨어야 해서 싫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콧구멍만한 아파트로 이사를 간 날 저녁, 수도꼭지에서 콸콸 쏟아지는 온수로 샤워를 한 경험은 잊을 수 없다. 나는 신의 은총이나 받은 듯 감격하였고, 추웠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하였다. 30년쯤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날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서도 문득문득 온수 샤워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행복한 감정에 휩싸인다.

나의 ‘소확행’ 중 단연 으뜸은 목욕탕에 가는 것이다. 대개 피로가 쌓이거나 과음한 다음날엔 꼭 목욕탕에 들른다. 온탕 안에 몸을 담그고 15분 정도 있으면 몸이 화악 풀리며 땀이 난다. 더러는 목욕탕에서 20분 정도 잠을 자기도 한다. 피로가 풀리고 숙취가 말끔히 해소되는 기분이다.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몸과 마음을 이렇게 개운하고 정갈하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 나는 목욕 이외의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한번에 3천5백원이나 4천원 하는 동네 목욕탕에, 일주일에 두어 번 가는 일을 나는 계속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목욕을 유독 좋아하는 걸까? 아마 따뜻함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따뜻함을 좋아하다. 물론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고집하고 얼음장 같은 바닷물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도 사람의 따뜻함은 좋아할 것이다. 이 행성에 떨어진 우리들은 모두 외롭고 쓸쓸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온기, 따뜻한 인정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우리는 열 달 동안 따뜻한 양수 속에서 자랐고, 어머니 품에 안겨 젖을 먹으며 자란 무의식이 있다. 우리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도, 스마트 폰에 코를 박고 소셜 미디어에 몰입하는 것도 사람에 대한 따뜻함이 그리워서 그런 게 아닐까? 우리들은 누구나 부드러운 사람을 그리워하고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존재이다.

봄이 왔다. 매화는 진즉 피어버렸고 곧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가 다투어 벌어질 것이다. 잇달아 벚꽃은 흐드러지게 만개하여 온 천지를 뒤덮을 터다. 그러나 봄이 와도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꽃이 피어도 즐겁지 않은 사람도 있다. 몸이 아파 신음하느라 온수 샤워를 못하는 사람, 가난하여 목욕물에 몸을 담그지 못하는 사람,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허우적거리는 사람, 삶의 무게 때문에 휘청거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봄이 와도 여전히 겨울인 사람들, 그런 분들께 우리의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사랑의 온기를 나누어야겠다. 꼭 연말연시만 이웃 사랑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행정관청에서도 응달과 추운 곳을 찾아 햇살을 쪼여 모두가 봄의 따뜻함을 누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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