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기

순천시는 농촌지역이 도시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넓다. 도시문제와 함께 농촌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외서면에서 17년 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계수 조합원이 농촌의 일상을 전하는 칼럼을 싣는다. <편집자 주>

 

 

우리 동네는 세 개의 자연 마을로 이뤄져 있다. 낙안으로 넘어가는 지방도를 따라 내가 살고 있는 농소 마을을 중심으로 동쪽에 새마을, 서쪽에는 신기 마을이 있다. 8세대가 살고 있는 농소 마을이 가장 오래된 동네이고, 역시 8세대가 사는 신기(新基) 마을은 근세 말에 성립되었는데 새터로 불리던 이름을 일제 강점기에 한자어로 고쳤다. 새터나 신기 마을은 어느 면에나 있는데, 이는 근세 말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새로 생긴 마을들이다. 한편 새마을은 40여 년 전부터 조성되어 지금은 6세대가 점점이 흩어져 살고 있다. 세 개의 마을 사이에 유기적인 연관성은 거의 없는데 행정의 편의를 위해 하나의 마을로 묶어놓았다. 따라서 주민들끼리 교류가 많지 않아 화합을 기대하기가 애초부터 어려운 조건이다.

해가 바뀌면서 우리 마을에 꽤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변화의 계기는 아내가 오랫동안 맡고 있던 마을 이장 일을 지난 연말에 그만두게 된 것이다. 젊은 사람도 적고 마을이 흩어져 있어 이장 일 보기가 까다로운 데다 마을 기금도 거의 없어 이장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앞마을에서 출향했던 후배가 귀농하면서 이를 맡겠다고 나섰다. 그는 정착한 지 2년이 되지 않아 면장이 적합하지 않다고 했지만 이웃 두 마을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장을 맡게 되었다.
이장이 새로 나자 대대적인 ‘적폐청산’ 작업이 이뤄졌다. 우선 농소 마을에서 노인이 맡고 있던 마을 노인회장 자리를 억지로 물러나게 하여 새마을 사는 할머니가 차지했다. 이 이는 우리가 귀농하던 당시 이장이었는데, 직전 노인회장을 맡았다가 노인정에 전혀 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가 다른 사람으로 교체한 데 따른 앙금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후 새 이장과 노인회장은 노인정을 겸하고 있는 마을회관 출입문을 잠가버림으로써 마을 노인들이 낮 시간에 날마다 이용하던 쉼터를 폐쇄했다. 동네 할머니들은 날마다 아침부터 회관에서 노시다가 우리집 선별장에 들러 계란을 손질해주시고는 회관에서 가끔 점심을 지어먹기도 하고 때로는 더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 지내던 분들이다. 이어 새 이장은 회관 한 구석에 있는 창고방을 비우게 했다. 그곳은 계란 선별장에서 지척에 있고 비어있어 우리가 계란 포장재를 보관해두는 곳이다. 결국 마을의 적폐청산 작업은 구이장인 우리 집을 겨누고 있는 셈이다.
어떤 연유로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첫째는 노인정에 대해 시가 지원하고 있는 물품의 사용에 대한 불만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노인들이 함께 모여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정부는 꽤 많은 양의 쌀과 난방비, 전기료를 마을 노인정에 지원하고 있고, TV와 냉장고, 운동기구, 에어컨 등 여러 편의시설까지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마을이 흩어져 있다 보니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다른 마을에서는 쌀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을 뿐 아니라 지원금을 현금화해서 우리 마을에서만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원금은 다 소모하지 못하면 남은 것을 반납해야하기 때문에 회관방은 늘 따뜻해서 우리는 집에 손님이 많은 날 회관을 자주 이용하곤 했다. 시골 할머니들은 지원되는 쌀로 함께 모여 밥을 해먹기 보다는 분배해서 쓰는 것을 선호하고, 우리 집으로 인해 회관의 연료나 전기 소모가 더 많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을 법하다. 더구나 지원 금품을 이장이 관리하다 보니 우리 집이 불만의 표적이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다.
둘째로 마을 인근에 들어선 태양광발전소에서 거금을 횡재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데 대한 불만이 매우 컸을 것이다. 우리 면에는 최근 2∼3년 사이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이 서너 군데 들어서면서 인근 마을에 수천만 원에서 억대에 이르는 돈이 들어와 한 마을에서는 세대당 기백만 원씩을 받았다는데, 우리 마을에서는 이장인 아내가 중심이 되어 인근 주민들의 개별적인 요구 사항과 마을 표지석, 회관의 안마기, 마을 상수도 전기료를 보상으로 허용해 주었으니 주민들은 허탈함을 넘어 배신감을 느꼈을 테고, 이는 뒷돈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의혹으로 연결됐을 것이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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