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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한해
이상인  |  72109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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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승인 2019.02.05  15:5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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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에 이어서 밝아오는 새해 새 아침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여 일이 지나고 있다. 봉화산이나 화포, 와온 바닷가에서 붉게 떠오르는 첫날 아침 해를 바라보며 각자의 소망을 기원하기도 하고 올 한 해의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작심삼일이 되지는 않았는지 굳게 다짐했던 자기와의 약속이 지금쯤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한 번쯤 점검해볼 때가 된 것 같다. 그동안의 과정을 되돌아보고 보충하거나 수정하여 계속하여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올해 약속을 걷기로 정했다. 걸으면서 건강도 챙기고 걸으면서 시의 소재도 생각하고 주변 사물이나 생명체와도 대화를 나누면서 오로지 걷기에 깊이 빠져들기로 하였다. 집에서 나와 원가곡길을 벗어나 동천 머리로 접어들면 넘실거리는 물결이, 그 수많은 삶의 주름살들이 접혔다가 펴지고 다시 접히는 굴곡진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름살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자신의 얼굴에도 마음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주름살을 많이도 새겨넣으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그 주름살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훈장 같은 연륜이고 자랑스러운 나이테 같은 것이다. 물결 속에는 청둥오리들이 무리를 지어 먹이를 구하면 헤엄쳐 다니고 있다. 서너 마리도 있지만 열 몇 마리씩 함께 다니면서 서로를 챙겨주고 신호를 보내 위험을 알리기도 한다. 
순천만 갈대밭도 자주 찾아가 걷는다.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드는 동쪽이 아니고 인적이 뜸한 화포 쪽에서 전망대를 향하여 갈대밭 옆 곧게 난 언덕을 걷다 보면 수많은 갈대가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그 사이로 쉬고 있는 철새들 무리가 보인다. 그중에 가장 으뜸은 흑두루미다. 덩치도 크지만 우아하고 기품이 있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다. 수십만 평의 갈대밭을 배경으로 흑두루미들이 날아오르고 줄지어 주변 논으로 먹이활동을 하기 위해 날아간다. 그때면 두어 마리 선발대가 먼저 앞서서 간다. 흑두루미 가족들이 왔을 때 위험하지는 않는지, 먹이는 어느 쪽에 많이 있는지 주변을 잘 살핀다. 인기척이 느껴지면 멀리 돌아서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아서 내린다.

두루미 - 고형렬
 
하늘에 두 사람이 날아가고 있다 
이야기하며, 
귀로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쳐다보며
 


고형렬 시인님의 ‘두루미’라는 시처럼 흑두루미들은 끊임없이 암호 같은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귀로 들어주며,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쳐다보며, 서로를 챙겨주고 배려한다. 먹이를 구하러 갈 때뿐만 아니라 먹이를 먹을 때에도 다투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 서서 먹을 만큼만 알맞게 먹고 또 일정하게 무리를 지어 하늘을 선회하며 갈대들 사이 뻘밭으로 돌아간다. 겨울이 지나 시베리아 등 북쪽으로 돌아갈 때도 현명하고 경험 많은 리더를 따라 편대를 지어 머나먼 여정을 날아가는데 몸이 허약하거나 어린 흑두루미는 중간쯤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뒤에는 또 건장하고 경험 있는 흑두루미가 앞서가는 이들을 잘 살피며 격려하며 무사히 한 철을 보낼 곳으로 날아가 안착한다고 한다.
우리도 흑두루미가 쓰는 이 한 편의 시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서로 이야기하며, 귀로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쳐다보며 아름답게 살아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각자의 생각들이 있고 하고 싶은 방향이 다르고 의견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이렇게 귀 기울여 주고 서로 소통하며 배려하는 을해년이 되었으면 한다. 일 년이 길어 보이지만 금방 지나간다. 올해 마지막 날 와온 선창머리에 서서 화포 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 해를 되돌아봤을 때 어떤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까? 순천만에서 날마다 쓰고 있는 흑두루미들의 시들을 늘 기억하며 우리도 이웃들과 늘 멋지고 따듯한 삶의 시들을 써보고 중얼거리듯 낭송해보자.

   
이상인-시인·순천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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