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 문화공간 산책 10]

▲ 강남정에서 본 순천 풍광

순천은 소강남(小江南) 외에 신선의 고을, 즉 선향(仙鄕)이란 지역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본지 181호(2018.04.05.간행)를 참조하면 좋겠다. 이를 반영하듯 순천부사 심통원은 1544년 읍성 동문 밖 동천 가에 지은 강무정(講武亭)을 신선을 부른다는 환선정(喚仙亭)으로 개명하였다. 이후 시인들은 이곳에서 신선세계를 동경하였다.

湖嶺之南海以邊(호령지남해이변), 호남의 남쪽 바닷가 변방이 
捿將秋色共巍然(서장추색공외연) 가을빛으로 물들어 온통 찬란하네
仙遊別界應驂鶴(선유별계응참학),  별세계 유람하는 신선은 학을 타고 
客立淸都怳蛻蟬(객립청도황태선) 맑은 도읍에 선 객은 신선인양 황홀하네 
碧樹晴分烟外寺(벽수청분연외사),  푸른 숲에 비 개니 안개너머 향림사 있고
彩檣暝戞水中天(채장명알수중천) 놀잇배는 노을빛 물든 동천에 떠있네 
憑欄欲挹浮丘袂(빙란욕읍부구몌),  난간에 기대 부구의 소매 잡고자 하니 
縹渺三山落照前(표묘삼산락조전) 아득히 삼산이 석양 앞에 있네

이는 순천부사 한기유(韓耆裕,1811.08~1813.08재임)의 「환선정」 시이다. 한가을 어느 저물녘 순천에 도착해 환선정에 오른 그는 순천의 첫인상을 신선과 결부한다. 도교에서 최고의 선경(仙境)을 옥청(玉淸)이라 하는 것처럼 순천을 ‘맑은 도읍[淸都]’이라 일컫는다. 또 해탈하여 신선이 된 것을 의미하는 ‘蛻蟬(태선)’ 및 상고시대의 신선인 부구(浮丘)・홍애(洪崖)와 세속을 벗어나 어울리고 싶다고 노래한 진(晉)나라 곽박(郭璞)처럼 한기유 또한 신선이 되고 싶은 감흥을 표출한다.

百尺雕欄襯水紅(백척조란친수홍),  백 척 화려한 난간 물가에서 붉은데 
經營當日鬼輸功(경영당일귀수공). 짓는 당일 귀신이 도와준 공 있었네
金章紫綬人間客(금장자수인간객), 금도장과 도장끈은 인간세상의 손님이고
綠髮靑瞳物外翁(녹발청동물외옹). 윤기 있는 머리와 푸른 눈은 물외의 늙은이네
盃吸鶴邊千古月(배흡학변천고월), 백학 곁에서 잔에 마시는 건 천고의 달이고
袖携鵬背九秋風(수휴붕배구추풍) 붕새 등에서 소매 펄럭거리는 건 가을바람이네    
誰知我本神仙侶(수지아본신선려), 누가 알리, 내가 본래 신선의 벗인데
謫下猶能向此中(적하유능향차중) 귀양 와 오히려 이곳을 찾을 줄을
 

이는 순천부사 이수광(李睟光)의 시이다. 금도장과 도장끈은 고관대작의 물건으로, 곧 순천부사직을 비유한다. 윤기 있는 머리칼과 푸른 눈은 송나라 소식(蘇軾)이 「사승(寺丞) 중소(仲素)가 벼슬을 버리고 잠산(潛山)에 돌아와 은거하기에 주다」란 시에서 “잠산의 은군자는 금년 나이 일흔 넷인데, 윤기 있는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로 세상일 사절하였네.”라고 한데서 나온 말로, 선인(仙人)의 건강한 모습을 표현한다.

▲ 이수광의 환선정십영(「승평지」

바람 불고 달 뜬 늦가을밤에 이수광은 환선정을 찾았다. 그는 자신을 세속에서 벗어나 신선의 형상을 가진 물외옹(物外翁)으로 견주고, 부사 직책은 신선세계에서 인간세상으로 귀양 온 자신에게 잠시 주어진 임무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자신이 본래 신선의 벗이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환선정을 찾은 이유는 귀양 온 인간세상에서 벗인 신선을 찾기 위해서는 신선을 부를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하고, 그곳이 바로 환선정이기 때문이다. 탈속에서 환속으로, 다시 속세에서 탈속을 지향하는 이수광의 발상이 흥미롭다.
이처럼 환선정은 속세를 벗어나 신선이 되고 싶은 욕망을 표출하는 탈속의 공간으로도 인식되었다. 이는 곧 ‘선향’이라는 순천의 지역정체성이 투영된 것이다. ‘정원의 도시 순천’은 어쩌면 선향의 현실 구현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김현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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