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10·19와 문학  7

▲ 정혜연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연구원

1962년 산문시대 1호에 처음 발표된 「건(乾)」은 반공이데올로기가 만연하였던 당대에 드물게 ‘빨치산’의 죽음을 서사의 중심에 내세우고 있다. 이는 이전의 김승옥 작품과는 다르게 전쟁(역사)이 성장서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건(乾)」은 도시를 습격하던 중에 죽은 빨치산 대원의 시신을 산에 묻고, 윤희라는 여고생을 빈집으로 유인하여 성적희생양으로 만들려는 형들의 모의에 가담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는 소년의 성장이야기이다.  
  소년이 빨치산의 시체를 대면하는 순간은 빨치산이 더 이상 ‘탱크를 닮은 괴물도 아니고’, ‘돌덩이처럼 꽁꽁 뭉친 그런 신념덩어리도’아닌‘어설프고도 허망한’죽음을 맞이한 인간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는 이념을 배제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조우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소년의 빨치산과의 ‘마음 따뜻한’조우와는 달리 아버지에게는 빨치산 시체처리는 돈벌이에 불과하며 형들에게는 무전여행의 방해물일 뿐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형들의 겁탈모의에 소년은 위악적인 선택으로 그 모의에 가담하며 성장한다.
  실제로 작가는 순천남국민학교에 입학 할 당시 여순사건이 발발하여 남부군이었던 아버지 김기선이 사망하였으며, 국가폭력이 집중되었던 이 지역에서 자랐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 지역의 남다른 성장서사의 아픔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내가 자란 정신적 풍토는 실제로 친척 중의 한 사람은 빨치산이고 다른 한 사람은 빨치산을 잡아 죽여야 하는 경찰이라는 식의, 사상의 횡포가 우리의 전통적 인간 관계 위에 군림하는 것을 피부로 느껴야 하는 곳이었다.”
  작가의 회고처럼 사상의 횡포아래 성장한 이 지역의 아픔을 7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작품 「건(乾)」을 통해 만나고 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빨치산을 대면했던 소년처럼 이념 속에 가려진 순수한 인간애를 회복해야 할 때이다.

정혜연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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