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10·19와 문학

 

양영제의 장편소설 <여수역>은 귀향의 내적 형식을 빌려 1948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70년전 발생한 여순사건의 실체, 특히 정통성을 상실한 국가 권력이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비극적 양상을 형상화해내고 있다. 이 작품은 여순사건에 대한 그동안의 침묵을 깨뜨리고 여순사건과 국가폭력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해냈다는 점에 큰 의의를 갖는다.  여순사건의 문학적 형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순사건이 여전히 여수와 순천 등의 지역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현재진행형의 과업임을 밝히고 있는 점인데, 이러한 과제를 작가는 여수라는 구체적인 공간과 장소성을 매개로 하여 이 작품에서 치밀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소설에서 제시되고 있는 여수의 많은 공간들이 여순사건의 실체를 드러내주는 장소성을 획득해내고 있다. 여수역 광장 – 귀환정 – 새마을 동네 – 번영상회 – 신월동 – 형제묘 – 여수 엑스포역 등의 공간의 명칭이 장의 제목으로 제시되면서 각각의 공간에 새겨져 있는 여순사건의 비극성이 효과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귀향의 여로와 함께 서사를 추동하는 핵심은 바로 주인공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이다. 하지만 주인공 ‘훈주’의 유년시절의 추억과 기억은 다른 귀향소설의 주인공의 그것들처럼 아름다웠던 것만은 아니다.  ‘훈주’에게 있어서 여수에 대한 기억은 수많은 학살과 죽음의 이미지로 전경화되어 그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공동체 구성원의 화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비극적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만 한다고 이 작품에서 피력하고 있다. 

‘작가후기’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작가는 여순사건의 문제를 단지 미국의 자본주의 세계 체제 전략이나 당시 권력집단의 폭력성과 권력욕만 탓해서는 안 될 것임을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가해자였던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책임과 의무에 대한 자기반성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궁극의 의미는 여순사건이 지나간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성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지금 해결하고 책임져야 할 사건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소장
 최현주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