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장사 접고 다른 데로 이전하는 정흥순 어머니

 

‘오뎅’(어묵이라고 하면 왠지 맛이 안 난다) 국물이나 호떡이 생각나는 겨울이다. 순천고 뒤, 이른바 ‘김재규 처갓집’ 앞에 작은 로터리가 있고, 거기 주황색 포장마차가 하나 있다. 술이 아니라 호떡과 오뎅을 파는, 이름도 없고 그래서 간판도 없는 포장마차다. 그러나 순천사람은 거의 다 아는 유명한 호떡집이다. 손님들이 차를 타고 와서, 줄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먹는 순천의 명물 중의 하나다. 호떡집은 30년 가까이 그곳에서 장사를 했기 때문에 이제 그 로터리의 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추운 겨울에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포장마차 안에 들어가 호떡을 시켜놓고 뜨거운 오뎅 국물을 마시는 서민들의 작은 즐거움. 그런데 이 ‘소확행’ 하나를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시청에 민원이 제기되어 포장마차가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포장마차가 로타리 가장자리에 있는 주차 공간 한 칸을 차지하고 있고, 손님들이 타고 온 차가 교통 흐름을 약간 방해한다고 그런 것 같다.

28년 간 포장마차를 운영한 정흥순 씨(72살)에 의하면 열흘 전쯤 시청직원이 와서 조심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민원이 들어왔다고. 안타깝지만 법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어서 자기들도 어쩔 수 없다고. 그리고 며칠 후에 시청직원이 또 찾아와 “민원인들이 매일같이 어떻게 됐냐고 항의성 전화를 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당황스럽고, 눈앞이 캄캄했다. 내심 억울하기도 했다. 세상인심이 각박하다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한참 넋이 나갔었다.

며칠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 생각해 보니, 애먼 시청 직원들을 곤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뾰족한 대책은 없었지만, 호떡 포장마차를 접거나, 어디로 옮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우연히 포장마차 철거 소식을 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김상임(71세, 삼화페인트 가게 주인) 씨가 만나자고 했다. 그 분은 포장마차 철거를 어머니보다 더 가슴아파하면서 선뜻 “여기서 멀리 가시면 안 돼요. 우리 가게를 비워 줄 테니 여기서 장사를 하세요.”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할 말이 화산처럼 솟아났지만 말문이 막혀 “고맙소. 고맙소!” 하는 말만 하고 나왔다. 지금도 고마운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해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다. 이제 호떡 포장마차는 한 달 전에 새로 맞춘 포장을 걷어내고 수레를 없애야 한다. 그리고 지금 자리에서 남문파출소 쪽으로 한 50미터쯤 내려간 페인트 가게로 이전을 하기로 했다.

28년 간 아무 문제가 없었던 호떡가게가 왜 갑자기 문제가 된 것일까? 당연히 민원 제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전엔 왜 민원이 제기되지 않았을까? 포장마차가 시민들의 생활에 그렇게 큰 불편과 지장을 주나?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호떡 구워 파는 것 하나 용납할 수 없는 걸까? 법은 눈물도 없는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제 정흥순 어머니는 길바닥이 아닌 실내에서 장사를 하게 되었다. 찬바람을 맞지 않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 된 건가? 어머니는 ‘잘 됐다’며 좋아하고, 더 행복해 하실까? 아마 그러지 않을 것이다. 가슴 한 복판을 찬바람이 뚫고 지나간 듯, 허전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우울해하지는 말자. 그래도 이 세상에는 삼화페인트 가게 주인 같이 가슴 따뜻한 사람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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