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의 주인은 인간 아닌 자연

▲ ▲ 순천만에 짙게 깔린 안개로 실재 무진기행이 되었다.

알쓸순잡(알아두면 쓸모 있는 순천의 잡다한 지식)을 표방하고 2018년 처음 시행한 '우리 순천 탐방 여행'은 지난 11월 25일을 마지막으로 총 9회를 실시했다.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이하 동사연)의 주관으로 순천의 문화, 역사, 생태, 자연, 사람살이를 배우기 위해 지난 3월부터 매월 순천 전역을 누볐다. 이번에는 별량면과 도사동, 남제동을 돌았다.
동사연 회원이자 문화해설사인 김은숙 씨는 해룡산성을 지나 거차마을로 가는 중에 "한국의 갯벌 중 30%가 훼손되었다."면서 순천만의 가치를 강조했다. ‘뻘쭘’, ‘뻘소리’ 등 쓸모없다는 뜻인 뻘이 갯벌에서는 정반대의 뜻이라며, 1세제곱미터당 10억 마리의 미생물이 사는 갯벌이야말로 생태계의 보고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갯벌은 1년 동안 쌓이고 쌓여야 1mm가 쌓이고, 100년에야 10cm일 뿐이라며, 관광객 수를 제한하고 순천만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자고 재차 강조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구 중 제대로 잘 보존된 지역은 한국에서는 순천만이 거의 유일하다. 자연의 원형 그대로 순천만을 보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 차원의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이기도 했지만, 습지의 가치를 알고 이를 지켜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순천만도 국가적 개발은 아니지만, 한국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개발의 광풍이 비껴가지 않았다. 바야흐로 1996년, 순천만을 파헤쳐 골재를 채취하려는 사업이 이미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동사연 등 순천 시민단체들은 순천시에 생태계 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생태계 보전에 대한 인식과 의지 자체가 없는 시기였으므로 거부당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시민단체에서는 생태계 조사를 했다. 1차 조사에서 바다물새 100여 종과 함께 세계적 희귀종인 흑두루미와 검은머리갈매기 등을 발견했다.

▲ ▲ 람사르협약의 의미는 ‘이 지역은 사람이 아닌 자연이 주인’임을 천명한 것이다. 순천만은 관광이 주가 될 수 없다. 순천만의 생물종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순천만 생태계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개발 반대를 내걸고 1997년 제1회 갈대제를 개최했다. 순천시나 주민들은 지역 개발에 대한 환상을 갖고 개발업자를 두둔했다. 제2회 갈대제를 하는 도중에 마을 사람들은 '새가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를 외치며 개발을 촉구했다. 시민단체에서는 감사 청구, 행정심판 제기 등 순천만 훼손을 막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1999년 제3회 갈대제를 맞이해서 마을 전역을 청소하며 주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드디어 2000년 초 순천시는 골재채취허가를 취소하였다. 장채열 소장으로부터 순천만 보존의 역사를 들으면서, 그의 흰머리와 푸석한 얼굴은 어쩌면 순천을 지키기 위한 노고의 상흔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태해설사인 안영선 동사연 회원은 갈대와 비슷한 식물 구별법을 재미있게 알려주었다. 산에서 셋이 살고 있었단다. 여기 모두 살기 힘드니 흩어지자며, 가위바위보를 했다. 처음에 이겨서 산에 살게 되어서 억세게 운이 좋다고 '억새', 한참 가다 모래밭 사이에 이르자 '난 더는 못 달리겠다.'고 해서 '모새달', 갈 데까지 갔다고 '갈대'라고 부르게 됐다고 전해주었다. 꽃을 보고 구별하는 법도 알려주었다. 산에 남은 억새꽃은 긴 머리처럼 단정하고, 열심히 걸어간 모새달꽃은 곱슬머리, 마지막까지 간 갈대꽃은 헝클어진 파마머리처럼 생겼다며 웃었다.
순천에 왜 미인이 많은지 알고 있나요? 고들빼기 원산지인 순천에서 고들빼기를 많이 먹어서 미인이 많다고 옛 문헌에 나온다니 믿을 수밖에 없다. 개랭이고들빼기마을에서 다양한 채소요리와 회무침에 점심을 푸짐하게 먹고 고들빼기 식혜까지 마셨다. 아직 빨래하는 우물이 남아있고 벽화가 특색 있는 ‘남제골 쉬엄쉬엄 마을여행’을 한 후 4시 반쯤 법원 앞으로 돌아왔다.
1년 동안 탐방 여행의 살림을 말끔하게 챙긴 정명옥 동사연 사무국장의 따뜻한 배려가 내년의 탐방 여행이 더 깊고 풍성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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