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벌교 지역민과 함께한 9년, 지원 한 푼 없는 무료 상황극 매달 선보여

 

   ▲ 3년 차 기행 때 김준희 단장과 김옥자 보성 문화해설사   
     김 해설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살기 버거울 때가 있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임 또한 그렇다. [소설태백산맥 문학기행단(이하 태산문단)]도 예외는 아니었다. 5년 차였을까?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버텨왔는데 다시 또 박근혜라니...' 하면서 자포자기의 심정에 휩싸였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다며,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았다. 힘들겠지만 "딱 10년만 버티자."고 서로 어깨를 결었다. 그 후 발은 무거웠지만 주저앉지 않았고 한해 두 해 잘 일궜다. 올해가 9년 차다. 2018년 마지막 기행을 마치고 한숨 돌리고 있는 김준희 단장을 만났다.
10년을 끌고 온 힘은 무엇일까? [태산문단]은 처음부터 지자체 등 관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았다. 시작할 무렵 관에서 뭘 도와주면 되겠냐고 했을 때, ‘다른 건 바라지 않고, 장소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관이나 기업체 등 외부의 지원을 받으면 간섭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이명박 정권 때라서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 ‘손가락 총’ 등을 문제 삼지 않을까 우려했다. 기행 하는 날짜도 관의 필요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보다 자력갱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김 단장은 되물었다. “지원을 받으면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지, 생활 속에서 문화를 꽃피우는 운동가가 아니지 않은가?”
자긍심의 바탕은 거대한 무엇이거나 객관적인 무엇이 아니다. 지극히 작고 주관적이지만, 자신에게 인정되는 자기만의 소중한 무엇이다. 그 무엇이 역사를 만든다. 자력갱생의 자긍심이 [태산문단]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 역사의 처음은 여느 것과 다름없이 소박했다. 2010년, 김 단장은 순천청년연대 대표직을 마치며 무얼 새로 시작할까 궁리 중이었다. 몇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동학혁명기행에 참여했는데, 무언지 모르지만 아쉬웠다. 기행 온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없을까? 동학군의 비석들이 쭈욱 서 있는 곳을 지날 때였다. “여기서 동학군들이 우르르 뛰쳐나오는 상황극을 하면 생동감도 있고 좋겠다.”는 생각이 김 단장 머리에 퍼뜩 스쳤다. ‘소설 태백산맥’이 상황극으로 만들어지는 시발점이었다. ‘소설 태백산맥’을 근간으로 벌교읍사, 보성군사, 여순사건피해사례집 등을 비교해서 대본을 짰다.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벌교 지역민들과 뜻을 모았다. 드디어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문학기행단이 탄생했다.
[태산문단]의 배우는 처음에 서너 명에서, 이제 14명으로 늘었다. 중학생부터 쉰살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 10시 반부터 4시까지 참가자들을 데리고 벌교를 돌며, 4개의 상황극을 한다. 하나당 20분 정도 걸린다. 대개 70명 정도가 참가하고, 현부자집 공연은 다른 여행객까지 150명 정도가 본다. 모든 물품이 갖춰져 있어서 실재 월 운영비는 30만 원 정도이고, 단원들이 분담한다.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지 않는 건 기행의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어서다. 또 같이 이동해야 하고 공연하는 장소가 협소하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일까?
창녕 남지도서관에서 70세가 넘으신 분들이 ‘소설 태백산맥’을 다 읽고 토론하신 후 기행을 오셨다. 가시면서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이 나이 먹도록 처음 봤다. 다른 곳은 선생님 한 분이 해설해주고 마는데, 중간중간에 상황극을 하니 마지막까지 긴장감이 있고 아주 좋았다. 다음에 꼭 우리 마을에 놀라 와라.”
또 하나는 몇 년 전에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회장이실 때 오셨다. 마지막 극을 김범우 집에서 마친 후,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두부김치, 태백산맥 막걸리 등으로 조촐하게 대접했다. “어머님들의 자식이 있었고, 어머님들이 계셔서 여기 저희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면서 한분 한분 소개해드렸다. 뿌듯했다.

 

지난 11월 10일에 있었던 2018년 마지막 기행에는 다양한 분들이 멀리서 찾아왔다.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기행 참여자를 모집했는데 2~3분 만에 마감되었다고 들었다. 참가자들은 ‘소설 태백산맥’을 활자로 이해한 후, 상황극을 보면서 책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장을 경험하고 감동에 빠져든다. 같이 울기도 하면서 공감하고, “다른 기행에도 참여했지만, 내 생애 최고의 문학기행이었다.”며 흡족한 마음으로 올라갔다.
김 단장에게 물었다. 박수갈채를 받는 배우로 뛰고 싶지는 않는지.
“저는 배우로서는 부적합하다. 목소리가 그 시대 목소리가 아니다. 얼굴도 안 맞는다. 언젠가 작은 배역을 맡았었는데 바로 잘렸다.”며 배시시 미소짓는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으뜸 일꾼이 틀림없다.

    ▲ 현부자집 연극 ‘멍든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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