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 출신인 송경동 시인은 리얼리스트다. 희망버스를 기획하고,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만민공동회, 을들의 국민투표, 오체투지, 광화문 캠핑촌 등을 주도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고 외친 체게바라처럼 큰꿈을 꾸었고,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그의 산문집 이름처럼 수배와 구속을 반복하고, 머리뼈가 부서지고 발이 부러져도 큰꿈을 놓지 않았다. 
꿈꾸는 리얼리스트, 송경동 시인이 시와 산문을 보내왔다. 큰꿈 꾸는 사람이 점점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시인의 꿈을 들으며 독자들도 함께 꿈꾸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재한다.                       

  -편집위원회-

 

혜화경찰서에서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
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러곤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증해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

 -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 수록

 

▲ 시인의 옛집이 있던 벌교 시장 앞에서 별낫던 유년 시절을 회상한다. 중학교 2학년 국어 선생님이 ‘봄비’ 주제의 시를 숙제로 내주었다. 할 수 없이 쓴 시는 생전 처음 칭찬을 이끌었고, 그 칭찬에 기대 이제껏 시를 쓰고 있다.


오늘 징역 15년 형이 선고된 이명박이 온갖 패악을 부리던 시절, 용산철거민 참사 진상규명 투쟁을 하던 중 끌려갔다 나오던 혜화경찰서 담벼락에서, 그러나 우리 두려워하지 말자고 꾹꾹 눌러썼던 시다. 이명박은 광우병 촛불 시위를 짓밟고, 이어 2009년 1월 용산4가 철거촌에서 살아보겠다고 망루를 짓고 오른 철거민들 다섯 명을 경찰 특공대를 투입해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불태워 죽였다. 가난한 철거민들을 ‘브로커’로, ‘테러분자’들로 매도하기도 했다. 몇 달 후에는 쌍용자동차 합법파업 현장에 다시 그 경찰 특공대를 투입해 살인 진압에 나섰다. 알려진 데로 그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가족들 서른 명이 스스로 목숨을 닫아야 했다. 그 다음해에는 무한한 건설자본들의 이해를 위해 4대강을 1자로 줄세우는 ‘대운하’ 사업을 강행하기도 했었지. 그 만행들을 생각하면 15년도 부족하다.

더불어 어제는 전 경찰청장이었던 조현오가 구속되었다. 경찰 불법댓글 공작 등 혐의였다. 쌍용차 파업을 강제 진압하고,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당시 경찰청장으로 위법하게 온갖 공권력 공작을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모두 지난 촛불항쟁의 힘이다. 최소한의 정의들이 바로잡혀 나가는 이 때, 계속 떠오르는 얼굴 하나가 더 있다. 허멀건 얼굴로 그는 현재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여의도에 있다. 용산 철거민 학살을 주도했던 전 서울경찰청장 김석기다. 그는 이명박근혜 시대 내내 승승장구했다. 오사카 총영사로,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급기야 국회의원 뱃지까지 찼다. 있을 수 없는 일. 그의 허연 가면을 벗기고 역사의 죄과를 묻는 날을 어떻게 앞당길 것인지 곰곰 생각해본다.

2018년 10월 5일
 

▲ 땅으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하듯 시인은 남쪽 바다의 끝을 보고 있다. 옥중서신에서 “실상 내가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 일상의 감옥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의식을 옭아메는 게으름과 자본, 가부장제로 인한 관습적 틀을 해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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