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는 여전히 농촌지역이 도시지역 보다 압도적으로 넓다. 도시문제와 함께 농촌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외서면에서 17년 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계수 조합원이 농촌의 일상을 전하는 칼럼을 싣는다. <편집자 자>
▲ 김계수 조합원


올해도 김장배추의 정식이 늦어졌다. 기온이 낮은 탓에 늦어도 9월 5일 즈음이면 끝나야 할 일이 한 주 이상 늦춰졌다. 여름 장마에 가물더니 가을장마가 져서 밭을 제때에 만들 수가 없었다. 봄배추 수확 때부터 나 있던 잡초가 높이 자라 있어, 이를 예초기로 치고 말렸다가 태운 후에 밑거름 깔고 땅을 갈아 두둑을 지어야 하는데, 그 시기에 비가 잦아서 일이 여러 날 밀려버린 것이다.

늦게 심은 배추는 한창 크는 중에 추위를 맞아 속이 들지 않기 때문에 상품으로 쓰기가 어렵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 배추를 꿋꿋하게 기다리는 소비자가 있고, 8월 초에 파종한 모종이 마당 한켠에서 자라고 있으니 내다심을 수밖에. 다행히 늦가을 날씨가 좋고 추위가 늦게 찾아오면 모르지만 변덕이 잦은 요즘, 날씨에 선처를 바랄 뿐이다.

가을장마가 지기 전에 미리 밭을 준비하고 모종을 낸 사람들의 밭에서는 배추가 제법 땅심을 받고 이파리가 널찍하게 퍼지기 시작한다. 10월 중순에 서리가 내릴 만큼 밤 기온이 차가워서 배추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다들 아우성인 때에 일을 서두른 사람들은 득의만면이다. 이런 배추도 늦가을 날씨가 따뜻하면 또 걱정이다. 배추 속이 너무 차고 하얗게 변하면서 속잎이 서로 엉켜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배추는 아삭한 맛이 없을 뿐 아니라 속잎을 들추고 속간을 하기가 어렵다.

400평 남짓한 우리 배추밭에서는 다행히 모종의 활착이 빨리 이뤄졌다. 그러나 봄에 맘 놓고 자란 잡초들이 남긴 씨앗이 발아해서 배추밭을 온통 잔디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잡초가 웬만하면 웃거름 하면서 호미로 긁어버리면 될 일이지만 그렇게 녹록한 상황이 아니다. 놉을 많이 쓰는 지인을 통해 인근 마을에서 할머니 두 분을 불렀다. 바래기가 뒤덮은 밭은 싹이 1㎝ 정도일 때는 호미로 긁어서 해결할 수 있지만 이미 5㎝ 이상 자란 것들은 뿌리에 흙을 떨어주어야 한다. 일이 하루에 다 끝나지 않을 듯해서 고랑은 나중에 예초기로 치기로 하고 배추 생육에 지장이 없도록 두둑만 매시라 했다.

오후 새참을 먹는 할머니들 볼이 부어 있다. 일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딸기 모종 하우스에 가면 이처럼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딸기 모종 수확이 한창인 얼마 전이었다면 놉을 부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볕이 따가워 미지근해진 물은 먹을 수 없으니 시원한 물을 가져오라고도 했다. 미안한 마음에 오후 일이 끝나는 다섯 시 이전에 일을 마치고 트럭에 태워 마을까지 모셔다 드렸다. 품삯을 봉투에 넣어 드렸다. 할머니들은 삯을 봉투로 받는 것도 황송해 한다. 소개한 사람에게서 품삯을 5만5천원으로 듣고 온지라 얼마를 넣었느냐고 물었다. 6만원이라 했더니 적이 만족한 표정이다. 수고하셨다며 계란을 한 줄씩 얹어 드리니 얼굴이 금세 환해진다. 하릴없이 소박한 분들이다.

지역의 주요 소득 작목인 딸기모종 농사는 그 특성상 놉을 많이 써야 하는데, 10여 년 전만 해도 딸기 농사에 필요한 놉은 지역에서 거의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노령화로 인해 여자 놉 상당수를 인근 벌교나 낙안에서 데려온다. 지역의 할머니들은 이제 대부분 전동휠체어, 유모차를 닮은 (가칭)의지차, 지팡이 등에 의지해 거동한다. 일할 만한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요새는 주로 태국에서 온 노동자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농업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딸기 농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 품삯이 놉의 공정 품삯이 된다. 매년 5천 원 정도씩 올라 올해는 5만5천원으로 정해졌는데,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6만원씩 주다보니 그게 굳어져버렸다. 태국에서 온 노동자들 품삯은 5만원씩이다. 50여 년 전에는 하루 품삯이 쌀 대승 한 되(1.6kg)였던 적이 있었다. 아침은 보리밥, 점심은 싸라기 죽에 고구마, 저녁은 수입밀가루로 쑨 팥칼국수로 연명하던 시절 일이다.

남자 놉은 아예 구할 수 없어 꼭 필요한 일에는 시내의 인력업체에서 불러다 쓰는데, 하루에 13만 원을 주어야 한다. 딸기 농가에서는 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일당은 물론 끼니와 새참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안주인은 식사 준비와 설거지로, 남편은 먼 동네까지 놉을 출퇴근 시키느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바쁘다. 그래서 이 농사도 오래 못하겠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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