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9일. 순천 문화의 거리에 있던 골목책방이 새로 태어났다. 빨간색 입간판에는 ‘그냥과 보통’이라는 글자가 지워지고 대신 ‘서성이다’라는 글자가 새로 쓰여졌다. 책방 이름 ‘서성이다’는 박노해 시인의 시 ‘서성인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입간판 뿐만 아니라 책방 곳곳에는 박노해 시인의 흔적이 있다.

 

책방 주인장이 바뀌니 책방 이름 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꽂혀 있는 책목록 등등이 모두 바뀌었다. 책방 한켠에는 정홍윤 씨가 손수 고른 인문사회과학, 여행 등의 책들이 있고, 또 다른 한 켠에는 조태양 씨가 추천하는 책들이 꽂혀 있다. 또 다른 한 켠에는 서점에 들른 독자들이 마음껏 펼쳐볼 수 있는 열람용 책들이 가득하고, 또 다른 한 켠에는 누구나 LP판을 가져다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LP플레이어도 자리 잡고 있다. 서점 가운데에는 누구나 와서 차를 마실 수 있고 독서모임을 할 수 있는 큰 원목 탁자가 있다.
 

 

조태양 씨와 정홍윤 씨는 오래 전부터 지역에 인문학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 방과후 학교 형식으로 함께 책을 읽고 인문학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하는 공간을 꿈꾸었다. 그래서 화수목 마을로 이주하면서 자신의 집 1층을 개방형 서재로 만들어 놓았고, 이 공간에서 인문학 학교를 해 보고 싶었다. 이곳에서 다양한 독서모임은 이루어졌지만, 접근성의 한계로 자신들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골목책방 ‘그냥과 보통’을 인수할 기회가 생겼고, 망설임없이 책방을 인수하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벌교여고에서 국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정홍윤 씨는 이곳에서 고등학생 나이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글쓰기 모임을 하려고 한다. 부산의 인디고 서점처럼 인문학에 관심있는 청소년들이 모여 함께 공부한 뒤, 반년마다 발행되는 청소년 인문학 잡지를 만들고 싶다. 나아가서는 격월간 순천청소년잡지를 발행하는 것이 정홍윤 씨의 꿈이다.
 

▲ ‘서성이다’ 운영자 정홍윤 씨와 조태양 씨.  인문학적 토양이 만들어지고 청소년 문화가 창출될 공간을 꿈꾼다.

조태양 씨도 정홍윤 씨와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 조 씨는 16년 째 독서토론 수업을 해 오고 있는데, 그동안 돈을 받고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제도권 밖에서 무료로 학생들과 독서토론 수업을 하고 싶었는데, 앞으로 책방에서 그 꿈을 실현해 보려고 한다. 자신의 독서토론 수업과 남편의 인문학 학교가 서로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책방일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직업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책방을 동시에 운영하려다 보니 여유 시간이 없어졌다. 책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해서 손가는 일이 무척이나 많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텃밭을 관리하거나 구절초가 예쁘게 피어 있는 정원에서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책방을 하면서 책을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져 그것이 즐겁다. 정홍윤 씨는 두 시간 동안 순천 여행객과 책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조태양 씨는 책방 인연으로 순천여고 3학년 학생과 친구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서점을 방문하는 손님들과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즐겁다.

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이 공간에서 쓰고 있지만, 이 일을 통해서 금전적 수익을 기대하지 않는다. 금전적 수익을 기대했다면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이 공간을 통해서 인문학적 토양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청소년 문화가 창출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단다.

문화의 거리에 있는 골목책방 ‘서성이다’는 청소년 인문학교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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