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문학과 여순사건

여순항쟁 70주년을 맞이하여, 문학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만나다! _여순항쟁과 문학 ③

 

 

이승만 정권은 여순사건을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 형성을 위한 다양한 방식의 배치와 통제, 배제와 억압으로 경계 짓기를 시작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편, 저편으로 분열시켜 빨갱이가 아닌 국민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각인시키려고 폭력과 법, 생활규범 등을 통해 신체와 내면을 규제해나갔다. 종교와도 같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작동은 절대적인 금기들을 설정하면서 자발적 순종만을 요구했다. 때문에 국민이라는 특수성 앞에서 인간으로서 공유해야 할 보편의 가치나 각 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윤리는 부질없어 보였다. 이청준은 이러한 폭력의 율법을 내면화한 채 공포로 고개 숙이고 침묵한 채 생존의 절박함에만 매달린 인간의 부끄러움에 주목했다.

이청준(1939년~2008년)은 소년의 나이에 경험한 좌우익 대립과 한국전쟁을 ‘전짓불 공포’라는 메타포로 소설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용시켜왔다. 캄캄한 밤중에 방문을 벌컥 열고서 눈부신 손전등을 비추던 이들. 강렬한 빛 뒤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어느 편인지를 물어대는 이들에게 그 어느 편도 아니지만 그 어느 편이라고 말해지길 강요당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의 공포. 이 생존의 공포 앞에서 인간은 부끄러운 존재가 된다.

이청준의「개백정」,「숨은 손가락」,「자유의 문」,「지하실」과 같은 소설에는 한낱 개와 같거나 송충이나 깜부기와 같은 벌레나 병균과 같이 여겨지는 인간의 존재, 어찌할 힘이 없는 어린 소년이거나 운명과 같은 올가미에 묶여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무력한 인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들은 공포로 고개 숙이거나 침묵하고, 감정마저도 표출할 수 없이 마비된 존재로 보인다. 심지어는 부질없는 자기 배반마저 일삼는다.

마을에서 제법 번듯하게 자리를 잡고 산 것이 허물이 되어 반동으로 취급받으며 사회주의 사상가들에게 일가족이 몰살되다시피한 외가. 외숙모는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구덩이에 던져진 죽음의 문전에서 가족을 파탄으로 몰아댄 “인민 공화국 만세”를 부르며 죽어간다.

반대로 적치시절 동네 인민위원장을 지낸 사람은 자신에게 총살을 선언한 국군의 총구 앞에서 “대한민국 만세!”라는 외마디를 터트리며 숨이 끊어진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이며, 생존의 절박함 앞에서의 부질없는 몸부림인가. 나아가 자신의 목숨을 구제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을 수밖에 없는 손가락질을 해야 하는 부끄러움과 직면했던 때이다.

이청준은 이러한 체험들을 문학 속에서 곱씹으면서 씻김질 할 방도를 강구한다. 폭력의 공포 앞에 선 상황에서 강렬하게 자기 자신을 빼내고 싶은 자기 숨김과 부재를 열망하고, 또 한편으로는 침묵을 강요하는 억압에 맞선 강력한 자기 증명과 진술의 욕구를 지니게도 된다.

이청준에게 그것은 그의 문학이 될 터인데, 그는 이 언어화 된 자기 증거의 욕구가 또 다른 억압이나 폭력으로 작동하지 않을 해체적 문학의 지점을 고민한다. 이청준의 문학은 진정 부끄럽지 않을 자유로운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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