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섭
    순천여고 역사교사

애국가 가사처럼 2018년 10월 19일과 20일의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1948년의 그날의 하늘도 그랬을까? 들녘에는 수확을 기다리는 벼가 노란 물결을 이뤘을테고… 하지만 그해 10월 아름다운 산하는 핏빛 범벅이 되었다. 그로부터 70년의 세월. 그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 명예 회복과 피해 보상을 위해서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이번 순천의 70주년 행사는 여느 때와는 크게 달랐다. 순천의 시민사회 단체가 미리서부터 결속을 하고, 시와 시의회가 동시에 추진을 하면서 협력 체제를 만들어냈다. 흔들리지 않고 목표를 이뤄냈으면 좋겠다. 우선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진실 규명 작업을 전담할 탄탄한 연구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식민과 분단, 독재를 거치면서 우리 역사는 왜곡과 조작으로 점철되어 왔다. 일제의 의한 식민사관은 상당한 수준으로 극복이 되었다. 하지만, 분단과 독재에 의한 현대사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가장 상징적인 것이 이른바 ‘여순 10·19’이다. 

이승만 정부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국군 내 좌익계 병사의 반란으로 낙인을 찍었고, 당대 최고 문인들을 여수와 순천에 파견하여 사건 왜곡에 나섰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한국전쟁사라는 책을 통해 이른바 정설을 만들어 냈다. 그 과정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부역 혐의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실탄이 아까워 일본도로 목을 쳤고, 악질적인 동네는 불을 질렀다”, “엉터리 같은 전투를 했다”와 같은 양심적인 군인의 진술은 철저히 외면했음이 최근 KBS 보도로 알려졌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라는 국가 기구의 진실 규명, 김득중 노영기 주철희 등 소장 학자의 진실 추적의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내외의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학문 성과를 역사 왜곡이라 단정하는 것은 또다른 낙인찍기에 지나지 않는다.

제주 4·3의 진실 규명에는 지역 신문사의 힘이 절대적으로 컸다. 전담 취재 부서를 두고 국내외 자료를 모았고, 증언 채록을 실시했다. 여기에 민간의 제주 4·3연구소가 학술적 접근과 4·3 기행 등을 통한 대중화를 견인했다.

하지만 우리 지역의 신문 가운데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신문은 없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의미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지만 학술적인 정립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여순 10·19’의 진실 규명 작업은 여수지역사회연구소가 오랫동안 수행해 왔다. 최근 국회의사당에서 개최한 것은 논의의 전국화를 위해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순천에서도 대학 안이나 밖에 전담 연구자를 확보하여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연구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새로운 연구소의 설립에 어려움이 있다면 이미 설립된 연구소에 현안을 맡길 수 있다.

연구소가 시급하게 해야 될 일은 다음과 같은 일이 있겠다.   

첫째 한국사 교과서가 ‘여순 10·19’를 바르게 기술하도록 시급히 대응해야 한다.
10월 12일 순천대 인문학술원의 학술 행사에서 제주도에서 오신 참가자가 제안한 사항이었는데, 현재 한국사 교과서가 편찬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와 출판사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여수 순천 10·19 사건’이라는 용어를 변경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나, 내용 기술에서는 왜곡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구술 사료의 수집이 시급하다.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실 수 있는 분들이 많지 않으며, 지금도 한을 품고서 말년을 보내거나 돌아가시고 있다. 구술 수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집에 나설 수 있는 인력을 시급히 양성하여, 체계적으로 수집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여순 10·19’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정리한 인터넷 사이트의 구축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자료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게 될 때 진실을 심각하게 왜곡한 사이트가 훨씬 많다. 특정 사안에 대해 학자들간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것은 나란히 적어 줄 수 았으나, 왜곡 조작된 정보를 진실인양 유포하게 할 수는 없다. 특히 사진 부분에서 왜곡하고 있는 바가 많으므로 바로 잡았으면 좋겠다.

역사는 기억하는 만큼 발전한다는 말이 있다. 애써 잊으려하기보다는 기억하여 정리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기억을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민관의 협력으로 지역의 역사가 정립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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