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항쟁 70주년을 맞이하여, 문학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만나다! _여순항쟁과 문학 ②

 

 

▲ 최성문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역사는 ‘권력의 승리’를 기록하고, 문학은 ‘개인의 상처’를 담아낸다. 역사는 국가 단위의 거대담론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옹호하지만, 문학은 미시담론으로 권력의 승리 속에서 잊혀진 개인을 호명하여 그들의 상처를 위로한다. 이때 국가는 거대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에 반하는 미시담론을 억압해 버린다.

제주4·3담론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가권력에 의해 폭동으로 씌어진 제주4·3의 실체가 드러나고 누구나 거론할 수 있는 저항담론으로 자리잡는데 기여한 것은 현기영의「순이삼촌」이다. 이 작품을 계기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제주4·3은 국가차원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현직대통령이 불의한 국가 폭력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이처럼 문학은 순이 삼촌의 개인적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지만, 침묵을 강요하는 국가권력의 폭력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4·3 중심에 현기영의「순이삼촌」이 있다면, 여순10·19담론 전개 과정에서 이념의 인식틀을 어느 정도 벗겨낸 작품은 이태의 『남부군』(1988,두레), 『여순병란』(1994, 청산)이 있다. 작가 이태(본명 이우태, 1922.11.25.~1997.3.6.)는 남한 빨치산의 전설이었던 이현상의 ‘남부군’에서 17개월 동안 빨치산으로 활동하였다. 이 체험을 바탕으로 이현상을 서사주체로 설정하여 『남부군』을 창작했다. 『남부군』은 1990년 영화화(정지영 감독)되어 대중의 관심을 끈 바 있다. 그에 반해 『여순병란』은 남부군의 주축세력인 제14연대 출신 병사들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작품이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역사에서는 제14연대 병사들로 기록되어 있지만, 작품에서는 그들에게 사건의 주체로서의 개별적인 이름을 부여하고 있다.

이영회, 연인 박옥순과 순천 죽도봉 데이트 도중 서북청년단 유기수 패거리와 붙은 시비 때문에 서북청년단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한다. 그는 서북청년단 유기수를 쇠망치로 가격한 후 국방경비대로 몸을 숨긴다. 사건 직후 백운산으로 입산하여 경남유격대 815부대를 이끌며 유격전의 귀신으로 이름을 떨치다가 1953년 11월 경남 신등면에서 교전 끝에 죽는다. 그는 사랑 때문에 빨치산을 택하여 24살의 나이로 죽는다.

  해방 이후 극심한 미군정의 ‘미곡수집령’ 정책에 대한 불만과 실업난에 국방경비대에 입대한 영산포 출신의 김금일, 가난 때문에 일본군에 자원입대했다가 해방 조국에 돌아왔으나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조국에 실망한 함평 출신의 이진범, 완도 출신의 김흥복, 해방 이후 보기 싫은 놈 많아서 입대한 광양출신의 송관일 등 여순10·19항쟁에 참여했던 주요 병사들의 삶과 죽음을 그려내고 있다. 이 밖에도 역사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수많은 이 지역의 실존 인물들을 형상화해 내고 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신월리 주둔 제14연대 연병장에서 시작하여 빨치산의 운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살다간 대다수 병사들은 이념도 모르는 이 지역 젊은이들이었다. 지리산에서 이름도 없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죽음에 대한 예의도 갖추지 못한 채 죽어간 그들은 ‘빨갱이’, ‘이념’을 제거하면 우리의 이웃이고, 이 땅의 국민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친근한 이웃이었던 이들을 ‘빨갱이’이라고 멍에를 씌운 채 역사의 죄인으로 지리산에 묻어둔 것은 아닌지, 이태의 소설 『여순병란』을 통해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여순10·19항쟁 70주년, 아픈 역사 속에 이름도 없이 버림받은 제14연대 병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 지면에 조심스럽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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