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미래 어디든 가 볼 수 있는 타임머신은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아 있는 문자나 사진 같은 기록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모습과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반추할 수 있게 하니, 과거로의 타임머신이라 할 만하다. 이 타임머신으로 100년 전 순천을 찾아가면 어떤 모습일까?

물결 위 반짝이는 햇살 가을옷에 비치고  
난간에 기대 저물도록 돌아가지 않네    
백 척 돛배 나란히 와 강가 저자 시끄럽고  
세 번 김매기를 마친 들엔 인적 드무네
고목의 매미는 시원하다 울어대고  
물가의 백로는 담담히 나는 걸 잊었네  
갑작스레 호복에서 소요할 생각이 있으니  
세상 흥취가 나와 어긋나도 괜찮으리라  

波光動日上秋衣(파광동일상추의),徙倚欄干晩未歸(사의란간만미귀).
百帆齊來江市閙(백범제래강시료),三鋤纔罷野人稀(삼서재파야인희).
蟬粘老樹寒猶語(선점노수한유어),鷺立虛汀澹忘飛(노립허정담망비).
頓有逍遙濠濮想(돈유소요호복상),不妨世興我相違(불방세흥아상위).

이는 현 순천시 장천동[당시 장명리]에 살았던 남파(南坡) 김효찬(金孝燦)의 「연자루(燕子樓)」 시이다. 그는 순천군수 이병휘(李秉輝)・유당(酉堂) 윤종균(尹鍾均,1861-1941) 등과 난국계를 확장하여 1913년 난국음사(蘭菊吟社)를 창설하였고, 연자루에서 봄가을에 시사(詩社)를 가졌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일이다.

▲ 1913년 매곡동 우명마을

가을날 연자루에 올라보니 좌우로는 울긋불긋 물든 산이 남쪽 바닷가까지 늘어섰고, 넓은 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쫙 펼쳐졌으며, 그 사이로 푸른빛의 한줄기 동천(東川)이 곡선을 그으며 유유히 흘러간다. 흔한 말로 한 폭의 풍경화가 따로 없다. 또한 돛을 높이 단 어선들은 바다에서 거슬러 올라와 읍성 가까운 동천가에 이르러 전을 펼친다. 그렇게 형성된 시장에서는 내놓은 물품을 외치는 소리와 가격을 흥정하는 인파로 북적인다.
 

▲ 석현동, 용당동 일대의 1960년대 모습

김효찬은 그러한 전원 풍광 감상의 즐거움 속에 날 저물도록 연자루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그는 이러한 낙이망반(樂而忘返)의 흥취가 곧 장자(莊子)가 말한 호수(濠水)에서 마음껏 노니는 피라미의 즐거움과 같다고 여기며, 세상 사람들 따라 흘러가기보다 자연과 함께 소요하는 소요유(逍遙遊)의 경지를 지향하고 싶어 한다. 전원 풍광에 한껏 매료된 모습이다.

순천읍성 남쪽 너른 들판의 오늘날 모습은 아파트를 비롯한 건물들로 채워져 있다. 읍성 북쪽의 현 석현동, 가곡동, 용당동 일대도 마찬가지로 농경지였으나 순천대학교・순천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한 각종 건물들이 즐비하다.

▲ 순천읍성 남문 밖의 오늘날 모습

공자(孔子)는 문헌만 충분하다면 하(夏)・은(殷)・주(周) 삼대뿐만 아니라 더 오래된 역사까지도 징험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처럼 100년 전 선인(先人)이 남긴 시 1수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순천 역사의 한 조각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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