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의「폐촌」

여순항쟁 70주년을 맞이하여, 문학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만나다! _여순항쟁과 문학 ①

 

 

▲ 정미경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연구원

한승원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목선(木船)」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래 현재까지 장흥에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고향 바다를 배경으로 여순사건과 6·25 전쟁, 군부정권, 광주민주화운동 등 근·현대사의 비극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갯가 사람들의 삶을 다루어 왔다. 이 글은 한승원의「폐촌(廢村)」(1976)에 드러난 여순사건의 면모를 일별해 보려는 의도를 지닌다.

한승원은 등단 후「신화」연작을 통해 설화의 세계를 그려 보이고,「한」 연작을 통해 남도 사람들의 한을 제시, 샤머니즘의 세계에 진입할 기반을 마련한다.「폐촌」은  신화와 한, 샤머니즘과 리얼리즘이 결합된 작품으로 그의 초기작 중 가장 독특하고 문제적인 작품이다. 설화 ‘가루지기 타령’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각시봉’과 ‘서방봉’의 묘한 생김새의 묘사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의 이름 또한 서방봉을 표상하는 ‘밴강쉬’와 역시 각시봉의 표상인 ‘미륵례’이다.  

전쟁 후 20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까지 폐촌으로 남아있는 하룻머릿골에, 오랜 세월 타지에 나가 있던 미륵례가 돌아온다. 그때까지 세 차례의 혼례를 치렀으나 그의 남근 크기를 견디지 못하고 아내들이 도망간 탓에 혼자 하룻머릿골에서 살아온 밴강쉬가 그녀를 맞는다. 밴강쉬가 미륵례를 아내로 삼기로 작정하면서, 작품은 두 집안의 악연과 마을이 폐촌이 된 사연을 드러낸다. 하룻머릿골이 폐허가 된 원인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여순사건과 6·25로 이어지는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 탓이다.

「폐촌」에서 한국현대사의 참화는 미륵례의 아버지 비바우영감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룻머릿골의 권력자이자 친일파였던 미륵례 아버지는 밴강쉬 아버지를 비롯하여 마을 사람들을 가혹하게 착취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징용 징병을 피하기 위해 은신해 있는 젊은이들을 순사들에게 손가락질 해 주어 주재소의 신임을 독차지했다. 비바우영감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저인망 어선을 소유한 유지였다. 그는 높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을 겸하고 있었다. 비바우영감은 빌려준 돈을 미끼로 마을 사람들의 집이나 배를 뺏는 폭행을 일삼았다. 해방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비바우영감을 짓밟아 파묻고 그의 우다시배에 불을 질렀다. 마을 사람들이 돌돌 뭉쳐 울분을 터뜨리는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친일파로서의 비바우영감이 얼마나 권력을 휘둘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비바우영감을 죽이는 일에 가장 앞장 선 사람은 밴강쉬의 형이었다. 그는 당시 마을에서 쫓겨났던 비바우영감의 두 아들이 경찰이 되어 마을로 돌아오자 보복이 두려워 경비대에 지원, 도피했다. 밴강쉬의 형은 여순사건이 일어나자 유격대가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그는 비바우영감의 두 아들이 자신을 살인혐의자로 끌어가려 한다고 추측했다. 그는 원한이 끓고 있는 상황에서 비바우영감의 아내와 미륵례의 언니에게 총을 겨누어 살해한 뒤 산으로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토벌군에 의해 죽음을 당해 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와 같이 미륵례 가족을 비롯하여 밴강쉬 가족, 마을 사람들은 해방과 여순사건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극단적 폭력을 휘두른다. 등장인물들은 일제 강점기 하의 친일과 여순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의해 서로 뒤얽히면서 연쇄적인 과정을 거쳐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한승원 소설에서 역사의 폭력은 희생자들을 형성,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며 원한 관계로 얽혀 또 다른 원한적 폭력의 희생자를 생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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