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계수 조합원

한낮에는 더위가 여전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기운이 전해지는 게 폭염이 한풀 꺾인 듯하다. 내일 모레가 모기도 입이 비틀어진다는 처서이니 더위도 계절의 변화를 어기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처서는 더위가 한풀 꺾여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으니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하고 가을 채소를 파종해도 된다는 절기이지만, 모기를 들어 처서를 표현한 것은 옛 사람들에게 모기는 얼마나 지긋지긋한 존재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한 달여 동안 지속된 유례없는 폭염은 지난날의 더위에 관한 기록들을 비웃듯 모두 갈아치워 버렸다. 지난겨울 혹한 때 기후 변화로 인해 기온의 진폭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했던 음울한 예측은 너무나 빨리 현실화되고 있다. 폭염 덕분에 계란 수거를 끝낸 오전 11시 무렵부터 오후 5시까지 들일을 할 수 없어 누구 눈치도 볼 것 없이 에어컨이 있는 계란방에서 쉴 수 있어 뜻밖의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그 휴식은 공짜가 아니고 외상이었다. 그 사이에 밭은 풀투성이고 논은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밭에 난 잡초야 작물을 새로 심기 전에 풀을 깨끗이 베어내고 갈아엎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지만 벼논의 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지난해 피농사를 지은 논배미는 봄이 되어 바닥에 널린 볏짚에 불을 대서 피씨를 태우려 했지만 볏짚만 타고 땅에 붙은 피씨는 전혀 타지 않았다. 그래서 모내기 전에 논에 물을 대서 피씨가 발아하면 트랙터로 경운 작업을 두 번이나 하고 모내기를 해서 피를 웬만큼은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모내기하고 10여일이 지나자 논바닥은 축구장처럼 벼와 바닥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잔디밭이 돼버렸다. 우렁이를 넉넉히 넣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한참 제초 작업을 해야 할 6월을 양파와 배추 수확으로 날려버리고 7월이 되어서야 피사리를 하기 위해 논에 들어섰는데, 이미 피가 벼보다 크게 자라 있었다. 피에 파묻힌 벼는 양분을 빼앗긴 데다 햇빛을 받지 못해 새끼치기를 하지도 못하고 모내기 때의 모습 거의 그대로 갇혀 있다. 

뿌리를 실하게 내린 피를 뽑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뽑은 피는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줄기를 끊어 논바닥에 거꾸로 박아야 하기 때문에 힘도 들 뿐 아니라 일이 무척 더디다. 이 작은 논배미에 매달려 있다가는 피가 조금 덜한 다른 논의 농사도 버릴 것 같아 농사꾼으로서 가장 부끄러운 일이지만 올해 그 논의 수확은 포기하기로 했다.

새로 들어서는 논은 아침나절로 열흘 쯤 일하면 해결할 수 있겠거니 했지만 두 고랑을 잡아 피사리를 하는 데 하루에 한 사래를 해내기가 만만치 않다. 항상 느끼지만 농사는 논두렁에서 보는 것과 논 가운데 들어서 보는 것은 천지차이다. 밖에서는 낙관적이지만 안에 들어서면 비관하기가 다반사다. 더구나 그 사이 피가 많이 자라 손목도 시큰거린다. 벼는 한 개체가 보통 서너 개씩 새끼를 치는데, 피에 치어 아들벼 한 둘이 물 밖으로 애처롭게 잎을 올리고 있다. 이렇게 늦게 나온 아들벼는 생육이 늦어 나중에 쭉정이가 되기 십상이다. 어미모들은 이삭을 머금어 줄기가 불룩하고 더러 이삭이 팬 것도 있는데, 피무더기 속에 있던 벼의 이삭은 길이가 정상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속도로 하다가는 수확을 장담할 수 없고, 내년 농사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나머지 한 논배미에서도 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김장채소 농사철은 눈앞이다. 피에 이삭이 패면 전부 논밖으로 들어내야 하기에 일은 더 어려워진다. 마음이 바빠져서 낫을 동원했다. 중국에서 수입된 작은 낫으로 톱날이 40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 좁은 고랑에서 풀을 베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밑동을 높이 남기면 거기서 또 싹이 올라올 것이 걱정돼 논바닥을 긁다시피 베어 고랑에 깔았다. 손으로 할 때보다 두세 배 빨라져서 아쉬운 대로 피사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나흘 뒤 낫으로 일한 고랑을 보니 베어 눕혀둔 피의 밑동에 남은 한두 가닥 뿌리 부근에서 새파랗게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조물주는 어떻게 이처럼 독한 생물을 만들어냈을까. 피가 갈수록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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