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협-7월 산행모임 / 대성계곡 산행기

7월 15일, 언협(言協) 정기 월례산행일이다. 더운 날씨 탓인지 여섯 명 단출하게 출발하였다. 목적지는 하동군 화개면 의신마을 거쳐 대성계곡이다. 지리산 여러 계곡 중 그 길이나 역사적 의미에서나 빼놓을 수 없는 곳이란다. 의신에서 세석까지 가자면 9km가 넘는 긴 계곡에다 지리산 빨치산 이야기를 하려면 이곳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 지리산 대성계곡 입구

출발 전 몸풀기 체조를 하였다. 오늘 하루 무사히 귀가하길 기도하면서 굳은 몸을 달랜다. 의신 마을을 지나고 땀이 처음으로 이마에 흐를 무렵 ‘아차’하는 소리가 들렸다. 체조하던 자리에 고급스틱을 두고 온 것이다. 김대장이 두말없이 쏜살처럼 수고를 하였다. 미남에다 마음도 천사!

얼마를 걸었을까? 보리밥집을 만났다. ‘먹고 가자 좀 더 있다 먹자’ 설왕설래 하였지만 대장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살짝 서운하였지만 좀 이른 시간이고 점심을 먹고 나서 산행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넘실대는 막걸리와 푸짐한 닭백숙의 유혹을 억누르고 계속 직진하였다.

오르막길이지만 하늘을 덮은 울울창창한 이파리들 덕분에 시원한 그늘을 걸었다. 더욱이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는 온갖 세상 시름을 잊게 해 주었다. 어쩌면 물소리가 너무 크고 요란하여 정신을 집중하기 어려운 조건이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하는 역설적 상황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그 옛날 연암(燕巖) 박지원이 중원대륙을 여행하다가 하룻밤에 아홉 번이나 폭우로 범람한 강을 건너야만 하는 상황에서 도를 깨우쳤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밝은 대낮에는 무서운 강물이 훤히 보여 그를 괴롭혔지만 어두운 밤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얻고 무사히 강을 건넜다는 이야기이다. 명심(冥心), 즉 ‘어두운 마음’이 진리에 이르는 길인가?

그런 생각도 잠시, 갑자기 모두 걸음을 멈추고 정적이 흐른다. 바로 앞에 말벌집이 있고 몇 마리가 윙윙 날며 길을 막고 있다. 앞 사람들이 무심결에 건드렸을까? 성급한 이들은 계곡 쪽으로 우회하였으나 우리는 평온을 되찾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연암선생의 도강(渡江)에 버금가는 도전을 시도하였다. 최대한 몸을 감싸고 좁은 길이나마 우측으로 붙어서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지나가야 한다. 잠시 후 날카로운 한 여인의 비명이 들려왔다. 모를 일이지만 그녀도 아마 나만큼 엄살이 심한 모양이다. 우리의 의료담당 양똑똑이 연고를 발라 주었다. 그런데 내려 갈 때는 어떡하지?

초대손님 김와이우먼이 좀 뒤쳐진다. 산에서도 배려는 기본이다. 속도를 조금 낮추고 세상 사는 이야기며 ‘광장’ 신문 이야기로 걷기를 계속하였다. 물론 ‘베스트 뷰’에서는 어김없이 전문사진사 이원장의 주문이 떨어진다. 12시 30분이 지났다. 우리는 등산로를 벗어나 계곡으로 향했다. 일이 되려면 주동자가 있어야 하는 법. 나는 웃통을 벗고 그대로 물속으로 풍덩하였다. 이어서 이원장 그리고 여성동지들까지 입수하였다. 보통 사람이 가장 손쉽게 신의 음성을 듣는 방법은 자연과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숲속에 들어서면 모든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아주 빠르게 동심으로 돌아간다. 성경에 이르기를 ‘어린 아이와 같이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하였다.

음식물 쓰레기 비닐봉투를 뜰채 삼아 아무 생각 없는 송사리들이 처음 보는 이들에게 몸을 내어 주었다. 우리도 응답하듯이 다시 놓아 주었다. 아마도 그날 저녁 그놈들은 엄마 아빠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으리라. ‘다 믿어도 사람은 믿지 말라!’고. 다음에 또 걸리면 우리도 딴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  그날 저녁 그놈들은 엄마 아빠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으리라. ‘다 믿어도 사람은 믿지 말라!’고

쉐프는 계란과 감자를 함께 삶았다. 처음 보는 조합이라 순간 당황스러웠다. 시장이 반찬인지 쉐프의 솜씨인지 모르지만, 평범한 계란과 감자의 깊은 맛은 생애 처음이었다. 역사 발전은 새로운 시도로 이루어지는 것!
 

▲ 평범한 계란과 감자의 깊은 맛은 생애 처음이었다. 역사 발전은 새로운 시도로 이루어지는 것!

아주 잠깐이었지만 우리는 천국을 체험하고 다시 이승으로 돌아왔다. 벌집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지나쳤지만 보리밥집은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백숙은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고 도토리묵은 재료가 다 떨어졌단다. 하는 수 없이 파전에다 막걸리를 마셨다. 먹는 즐거움은 이미 계곡에서 누렸으니 귀갓길에 봉숭아 밭에 들르기로 하였다. 아직 좀 이르기는 하지만 토실한 살이 붙어 씹는 맛이 좋았다. 길라잡이 입담으로 덤으로 몇 개를 더 얻어 사이좋게 나누었다. 단돈 이만 냥으로 먹고 마시고 신선놀음까지. 이보다 더한 여름나기가 어디 있을까? 독자 여러분, 다음 달 산행에 꼭 함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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