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부 김예슬(서와)

6월은 농부에게 정말 바쁜 때이다. 양파와 마늘과 감자를 거두고, 그 자리에 콩과 깨와 수수를 심는다. 이 밭 저 밭을 부지런히 다니다 보면 6월이 다 어디로 갔는지 시간이 흘러 있다. 그래서 6월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공부를 한다는 뜻으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저녁밥을 먹고 책상에 앉으면 연필을 쥐고 꾸벅꾸벅 조는 날이 더 많다. 농부가 되기 전에는 주경야독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란 걸 몰랐다. 더구나 주경야독을 오래 했다가는 몸이 쉽게 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 밭에 가야 하는 나는 주경야잠을 선택했다. 내가 좋아하는 농사일을 오래하기 위해서는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쁜 날들이 지나고 장마가 시작됐다. 농부인 나에게 장마는 긴 휴가다. 늦잠을 자고, 비바람 치는 창가에 멍하게 앉아있기도 한다. 바빠서 쓰지 못했던 글을 쓰고, 영화랑 책도 본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다. 장마가 지나고 찾아올 뜨거운 여름에 힘을 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고 보면 자연은 농부가 일 년 내내 바쁘도록 하지 않는다. 적당한 때에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자연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살고 싶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똑같은 말을 쓰지만 그 속에 담는 가치와 기준은 모두 다르다. 몸이 고생스러워도, 돈을 잘 못 벌어도, 인정해주는 사람이 적어도, 나에게는 흙을 밟고 서서 농사를 짓는 삶이 행복이다. 흙 위에 서면 밭에 심긴 고구마처럼 나도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느낀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올해로 다섯 번째 농사를 짓고 있는 어엿한 농부다. 자연에 있는 게 편안하고, 흙을 만질 때 행복하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가장 너다운 모습으로 살아.”라고 말해 주셨다. 그 말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자유로운 선택을 하면서 살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이 정도는 이루어야 성공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들로 부터 말이다. 삶을 고민하고, 때로는 내일에 대한 불안을 느끼지만 어떤 모습이든지 ‘스스로 선택한 나’로 살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를 생각하다가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시 한 편을 썼다.

사람

남한테 피해주지 않으려면
누군가한테 버림받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그래서 사랑 받으려면

우리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쓸모 있으려고
오늘도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고
밤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쓸모 있는 사람보다
오늘 본 밤하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똑같은 말을 쓰지만 그 속에 담는 가치와 기준은 모두 다르다. 몸이 고생스러워도, 돈을 잘 못 벌어도, 인정해주는 사람이 적어도, 나에게는 흙을 밟고 서서 농사를 짓는 삶이 행복이다. 흙 위에 서면 밭에 심긴 고구마처럼 나도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느낀다. 바람 따라 춤추는 나무, 내가 이름 붙여준 새, 후 불면 쏟아질 것 같은 별, 잠자리에 누우면 살짝 욱신대는 허리. 이 모든 것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한다. 살아있다는 걸 느끼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문득 가슴이 뭉클해 질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살아있는 삶은 쓸모만 있는 삶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삶이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올해로 다섯 번째 농사를 짓고 있는 어엿한 농부다. 자연에 있는 게 편안하고, 흙을 만질 때 행복하다.


내가 농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 “꼭 다른 세계 이야기 같아요.”하는 말을 한 번씩 듣는다. 나에게는 평범한 날들이 왜 누군가에게는 다른 세계가 되어야 할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혼자 행복 하고 싶지 않다는 고민이 더 깊어진다. 다행히도 다른 길을 두리번거리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멈추어 서서 두리번거리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멈춰서야 ‘나’에 대해 질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길을 잠시 쉬어가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 쉼 속에서 살아있는 ‘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농부로 살아가는 내 삶을 궁금해 하고, 고개 끄덕여주는 친구들이 생겼다는 것이 기쁘다. 다른 세계에 혼자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마음이 든든하고, 따뜻해진다.
 

 

요즘 강아솔님이 부른 <들꽃>이라는 노래를 많이 듣는다.

“내 꽃잎 비록 화려 하진 않지만, 내 피어난 곳 예쁜 화원 아니지만 괜찮아. 나를 보려 발걸음 멈춰 주는 그대만 있다면, 나 그걸로도 행복 얻으니.”

노랫말처럼 많은 사람이 들여다 보아주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제 향기를 잃지 않고, 피었다 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나도 그런 들꽃처럼 살고 싶다. 작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용기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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