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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못자리 변천사
김계수  |  dal-nam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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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호] 승인 2018.06.22  15: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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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계수 조합원

엊그저께 내가 모내기를 마침으로써 우리 동네 모내기가 마감되었다. 올해 모내기 준비는 처음부터 꼬였다. 볍씨 소독을 함께 하기로 한 낙안의 대농과의 사이에 날짜에 착오가 생겨 볍씨 소독부터 뒤늦었다. 요즘 벼농사에서 큰 걱정거리 중 하나는 키다리병이다. 아마도 유전적 변이로 인해 벼가 연약한 상태로 키만 높이 자라고 쌀로 쓸 수 없는 부실한 열매를 맺는 병이다. 친환경 벼농사를 짓는 농가에서는 시판하는 소독약 대신 섭씨 70도 정도 되는 열탕에 볍씨를 10분 정도 담가 소독하는데 그 일을 놓쳐버린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볍씨를 소금물에 담가 물 위에 떠오르는 부실한 씨앗을 최대한 골라내고 유황을 희석한 물에 볍씨를 하루 반 정도 담그는 방법으로 소독했는데 걱정했던 것 보다는 모판에서 키다리가 적게 나왔다. 유황은 무기물 중에서 살균력이 꽤 좋은 물질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작년에 피 농사를 지은 논에 떨어진 피 씨를 어떻게든 해결해보고자 산불 감시 기간이 끝나는 5월 초에 논바닥에 널린 피 짚에 불을 지폈다. 요즘에는 행정에서 이른 봄까지 산불 감시원을 두고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 들판에 남은 농작물 잔사나 농두렁을 절대 태우지 못하게 한다. 불을 피우면서 기대했던 바와 달리 피 짚만 타고 바닥에 깔린 피 씨는 전혀 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논에 물을 대고 피 씨가 발아하기를 기다렸다가 논을 두어 번 갈아 피 씨를 얼마간 제거했다. 그러는 바람에 모내기가 또 지체되었다.

어렸을 적에는 논에 모판을 반듯하게 만들어 물을 대고 그 위에 움을 틔운 볍씨를 직접 뿌렸다. 소독 같은 것도 없었다. 밤에 보온할 수단이 없으니 볍씨도 일찍 뿌리고 찬 물 속에서 발아한 벼는 매우 더디게 자랐을 것이다. 벼가 어느 정도 자라면 못자리에 들어가 피를 뽑아냈다. 논에 모내기 준비를 마치면 못자리에 들어가 모를 찐다. 모를 서너 개씩 양손으로 붙잡고 비스듬히 끌어당겨 땅에서 떼어낸 것을 몇 주먹씩 모아두었다가 한 단으로 만들어 모의 중간을 볏짚으로 묶어 단을 지었다. 못단을 논두렁으로 꺼내 물을 뺀 다음 바지게에 쟁여서 벼논으로 지고 들어가 적당한 간격으로 던져둔다. 그것을 모침이라 했다.

그 시절에는 요즘처럼 물신이 없어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맨살로 무논에 들어갔는데, 시집갈 나이가 된 처자는 허연 속살을 보인다 하여 무논에 들여보내지 않는 집도 있었다. 물 속에서 W자를 그리며 헤엄치는 거머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녀석들은 마치 유령처럼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다리에 달라붙어 피를 빨았다.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발견한 거머리는 쉬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상처에서는 피가 오랫동안 흘렀다. 녀석들의 입에는 피가 응고되지 않게 하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거머리를 논에서 보기도 힘들어졌다.

그러다가 똑같은 모판에 대나무 활죽을 꽂고 비닐을 덮어 밤에 보온을 해줌으로써 벼의 생육을 촉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비닐은 낮에 온도가 너무 올라 불깡통으로 군데군데 구멍을 내서 온도를 조절해 주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그런데 손 모내기가 기계 이앙으로 바뀌면서 못자리도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플라스틱 모판에 황토를 담고 그 위에 움을 틔운 볍씨를 뿌리고 다시 흙을 덮어 보온을 해두면 싹이 올라오고 이것을 못자리에 내고 그 위에 보온용 부직포를 덮어 벼의 생육 기간을 훨씬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때는 고운 황토를 확보하는 것이 꽤 큰 숙제였는데, 요즘에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상토로 모두 대체되었다.

벼농사가 소수 대농에 집중되면서 기계화도 더욱 진전되어 벼 모판을 만드는 일도 일관 공정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이 일에는 일꾼이 최소한 여덟 정도 필요한데, 전에 개인 작업이었던 못자리 만드는 일은 기계화 덕분에 뜻하지 않은 협업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 기계화는 과거 온 동네 사람들이 동원되어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품앗이로 모를 내던 시절의 흥겨움, 무논에서의 무료함과 피로를 날려버리는 질펀한 농담, 논두렁에서 먹던 못밥과 막걸리, 맨발의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올라오는 부드러운 논흙의 느낌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인문적인 기준에서 문명은 진보하는지 나는 올해도 모내기를 하면서 심각하게 회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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