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광장신문은 협동조합이 만든 신문이다. 조합원들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담을 때 협동조합 언론으로서 그 가치와 의미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이 곧 순천지역의 다양한 사람들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공동체를 따뜻하게 할 것으로 보고‘IN 순천, 순천인’을 기획한다.


아버지는 지금도 일을 하신다. 많이 배우지는 않으셨지만, 눈썰미가 좋으셔서 전기, 토목, 보일러 등 웬만한 기술자들이 하는 일들을 잘하셨다. 덕월동에서 오랫동안 고물상을 운영하셨는데, 작은 재료, 물건 하나 허투루 버리는 일이 없으셨다. 본인에게는 동전 하나도 아끼시던 분이었지만 일 마치고 집에 오실 때 우리 남매를 위해 꼭 작은 군것질거리라도 사 들고 오셨다. 그 재미로 저녁이 되면 짠내 나는 아버지를 많이 기다렸었고 아버지의 트럭이 보이면 강아지처럼 달려나갔었다.

대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매일 전대병원을 오가며 어머니 병간호를 하셨는데 어린 마음이었지만 두 분의 정을 알 것 같았다. 위험한 고비가 왔을 때 아버지는 진짜 속내를 보이셨다. “나는 너희들보다 너희 엄마가 더 좋다. 네 엄마 없으면 못 살 거 같어. 네 엄마 잘못되면 나는 너무 슬플 거 같어.” 어머니는 암세포가 폐까지 전이되어 한때 힘드셨지만 잘 견디셨고 차차 건강을 회복하셨다. 아버지에게는 어머니가 세상 전부였다.

부모님이 검소한 분들이라 저축을 많이 했었지만 20여 년 전 의료비는 매우 비쌌다. 제대로 된 보험도 없었기 때문에 모아두었던 대부분의 돈을 치료비에 다 쓰셨다. 고물상을 팔아서 치료비에 보탰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다. 설비 기술이 좋았던 아버지는 청암대학교의 기술직 직원이 되셨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항상 다정하고 다복한 우리 집이었다. ‘나는 그때가 참 좋았어!’라는 기억은 없지만, 지금까지 늘 좋았다. 일흔이 넘은 지금도 일을 하는 부모님이 우리 남매 곁에 큰 나무처럼 버텨주시니, 나는 참 좋다.
 

▲ 과일나무와 텃밭 그리고 마당이 있는 집- 아버지가 지은 작은 벽돌집

 
은퇴하신 후 야간 경비직을 다시 시작하셨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고맙다고 하신다. 아버지는 가끔 종이에 네모난 그림을 그리고 알 수 없는 숫자를 적어둔 메모를 하곤 하셨다. 낙서인지 메모인지 모를 그림을 틈만 나면 계속 그리셨는데 알고 보니 설계도였다. 상사에 땅을 조금 사셨단다. 아들딸 손자들 주말이면 쉬어가라고 집을 지으실 거라 했다. 우리도 이제 결혼해서 애들 교육하느라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무슨 돈으로 집을 지으시려 할까 내심 걱정이 많았다. 그게 자식이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모른다. 아버지는 이미 손자들이 생겼을 때부터 집 지을 계획을 세우셨다.

친구가 편백나무 농장을 하시는데 나무가 잘 크게 하려고 간목을 할 때마다 버리는 폐목을 직접 얻어오셨다. 그렇게 구해온 나무를 직접 말리고 다듬어서 목재로 준비해 두셨다. 겨울이 되면 시내 곳곳에서 보도블록 교체작업을 한다. 여기저기 작업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쌓여진 폐보도블록을 얻어오셨다. 비용을 줄인다며 어머니와 단둘이 한 장 한 장 차에 싣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봄이 될 때까지 모아둔 보도블록은 아버지의 벽돌이 되었다. 묵은 때를 벗기려고 봄비를 맞히며 얼마나 설레었을까?
 

▲ 건축일은 경험이 없으시지만 시골사람은 이 정도는 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신다. 편백나무를 다듬어서 목재로 이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다림과 땀을 흘리셨을지, 대들보를 보면 울컥해진다.
 


마당 터 닦기 할 때 포크레인 기사를 불러 공사한 것을 빼고 모든 공정을 어머니와 단둘이 하셨다. 그해 늦가을에 공사를 시작해서 어느 날은 기둥을 세우고 어느 날은 대들보를 얹었다. 네 귀퉁이가 막아지고 지붕이 올라가고, 더디지만 튼튼하게  어느 하나 아버지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다. 겨울 지나 이듬해 여름에 큰 거실이 있고 지붕이 나지막한 벽돌집이 완성되었다. 자두, 복숭아, 오디나무를 심고 잔디를 가꾸고 텃밭을 만들었다. 아버지의 벽돌집은 벌써 다섯 살이 되어간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이면 거의 대부분 아이들과 상사의 집에 간다.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마당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깨어 나가보았다. 아버지와 아이들이 길고양이 한 마리를 잡으려고 한바탕 소동 중이었다. 그걸 왜 잡으려고 그러냐 했더니 고양이 다리가 부러졌단다. 붙잡아서 다리를 치료해주어야 살지 그렇지 않으면 염증이 생겨 죽는다고. 한 시간 남짓 소동을 피운 후 고양이를 붙잡아 기어이 다리에 튼튼한 부목을 대어주었다. 그 녀석 아팠지만, 힘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힘이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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